시민들 "뒷북… 예방 책임 떠넘겨"
정부가 7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발생하거나 거쳐간 병원 명단을 발표했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미 박원순 서울시장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확진환자 동선과 방문장소를 공개한 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통해 대부분 알려진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오히려 메르스 감염 사태를 진정시킬 뾰족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아 결국 국민에게 예방 책임을 미룬 것 아니냐는 비난 목소리만 한층 높아졌다.
정부의 뒤늦은 정보공유에 여론은 무덤덤했다. 지난달 17일 확진환자가 발생한 서울 강동구 365서울열린의원 인근에 거주하는 주부 안모(34)씨는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 사이에선 이미 소문이 다 퍼져 그 병원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라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이제야 공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보건당국을 성토했다. 회사원 진모(38)씨도 “당초 정부가 괴담으로 치부하던 내용을 ‘사실’로 인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근본 대책이 전무한데 문제가 있는 병원 명단만 안다고 해서 공포가 줄어들 리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병원 명단 발표도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송파구에 거주하는 정모(41)씨는 “국민에게는 알리지 않더라도 보건당국과 지자체 간에 정보를 공유하는 등 긴밀하게 협조해 대처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하니 지자체가 나서고 국민들이 이를 지지하자 떠밀려 공개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골든타임’을 놓친 병원 이름 공개는 의미가 없다”며 “3차 감염 환자가 나오기 전에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명단 공개를 통해 결국 감염 예방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겼다는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영등포에 사는 주부 김모(35)씨는 “발병 초기에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더니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자 각자 알아서 피하라고 한다”며 “대한민국 방역시스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개인사업을 하는 이모(39)씨는 “발병 17일 만에 국가 안전을 총괄하는 국민안전처가 보낸 문자가 기껏 ‘손 잘 씻고, 입 가리고 재채기 하라’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메르스에 감염된 삼성서울병원 의사 B(38)씨가 참석한 재건축조합 총회를 연 개포동 주공아파트의 한 주민은 “뚜렷한 해법이 없으니 정보를 알아도 혹은 몰라도 불안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숨을 지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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