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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國 부룬디 민주화 열망, 아프리카의 봄을 깨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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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國 부룬디 민주화 열망, 아프리카의 봄을 깨우나

입력
2015.06.0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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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투족 은쿠룬지자 2005년 집권

10여년 내전으로 30만명 숨지자

유엔 도움받아 평화협정 체결

3선 도전에 반대 격화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

부패·무능보다 헌법 위협을 더 경계

이웃 독재 국가들 촉각

아프리카 중심부의 작은 나라 부룬디가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랜 내전 끝에 민주주의를 찾은 국민들이 또다시 헌법을 거스르며 집권을 연장하려는 정권과 충돌하며 민주주의 수호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부룬디 민주화 시위는 주변 국가들에까지 전해져 권력 유지를 위해 수 차례 헌법 개정을 시도해 온 독재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2010년 시작된 중동지역 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인 ‘중동의 봄’의 불씨가 종교원리주의와 독재자들의 거센 역풍으로 사그라지고 있는 지금, 부룬디 사태가 ‘아프리카의 봄’의 새싹을 틔울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현 대통령, 헌법 거슬러 3선 도전 시도

부룬디 집권여당 민주방위국민회의-민주방위군(CNDD-FDD)은 대통령선거를 한달 여 앞둔 지난 4월 25일 현직 대통령 피에르 은쿠룬지자를 대선 후보로 결정했다. 이미 2005년에 이어 2010년 연임한 바 있는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3선에 도전한다고 발표하자, 국민들은 ‘5년 임기의 대통령을 1회 중임으로 제한하고 있는 헌법을 거스르는 결정’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 수백명은 수도 부줌부라에서 시위를 벌였고, 그 물결은 지역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격렬한 저항에도 은쿠룬지자 대통령은 ‘첫 임기는 의회 선출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3선 도전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3선 반대 시위가 힘을 더해가던 지난달 13일, 고데프로이드 니욤바레 장군은 결국 쿠데타를 선언했다. 은쿠룬지자 대통령의 3선 출마에 반대하다 지난 2월 정보국장에서 해임된 그는 대통령의 탄자니아 방문을 틈 타 군을 이끌고 정부군 공격에 나섰다.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쿠데타군과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부군 사이에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군인과 시민들이 도로 곳곳에 쓰러졌다.

치열한 접전으로 사망자가 속출한 가운데 쿠데타는 이틀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쿠데타군 병력이 정부군에 비해 한참 모자란 데다 시위를 주도한 니욤바레 장군이 투항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정부군은 니욤바레 장군과 부지도자 시릴레 다이루키에를 비롯한 쿠데타군 지도부 3명을 체포했다.

내전 트라우마에 10만여명 피난 이어져

유엔난민기구(UNHCR)는 쿠데타 불발로 막을 내린 정치적 폭력사태 이후 부룬디 국민 10만5,000여명이 탄자니아와 르완다, 민주콩고 등 주변국가로 피난했다고 밝혔다. 카린 드 그루이지 UNHCR 대변인은 탄자니아로 약 7만200명이, 르완다로 2만6,300명이, 민주콩고 남키부지역으로 1만명이 각각 탈출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피난 행렬은 수십년 간 내전을 치른 부룬디 국민들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외신들은 설명했다. 부룬디는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한 이후 끊임없는 내전과 갈등을 겪었다. 특히 1993년부터 10여년 간 이어진 내전에서는 3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국민들은 이번 사태 역시 심각한 내전으로 비화해 또다시 참상을 겪는 상황이 올까 두려워 미리 자기 나라를 떠나고 있는 것이라고 AP가 보도했다. 쿠데타 불발 직후 르완다로 향하던 한 부룬디인은 AP에 “더 이상 죽고 죽이는 내전을 겪고 싶지 않다”며 “위험을 피해 르완다로 떠나 살 것”이라고 전했다.

부룬디 인구의 85%를 차지하지만 권력을 갖지 못했던 후투족과 인구의 15%에 불과하지만 권력 대부분을 장악했던 투치족의 갈등은 지난 1993년 첫 후투족 대통령인 멜키오르 은다다예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2005년까지 계속됐다.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는 대치 속에서 사망자는 속출했고, 1998년 내전이 절정에 달했을 당시 국민들은 매달 평균 900명이 숨지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사망자가 30만명에 달한 2005년이 돼서야 양 측은 유엔의 도움을 받아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 해 처음으로 국회의원들에 의해 후투족 출신 은쿠룬지자 대통령이 선출됐고, 그는 민족 화해와 경제 회복 운동을 펼쳤다. 2009년, 정부와 마지막 반군이 화해하며 부룬디 국민들은 평화를 맛보는 듯 했다.

그러나 부룬디의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10여년 간 경제 발전을 외쳐왔던 정부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 사이 정치가들의 부패는 더욱 심각해졌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지난해 발표한 부룬디의 인간개발지수(HDI)는 전체 187개 국가 가운데 180위 수준이다. 또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청렴도지수(CPI) 보고서에 따르면 부룬디는 165위로,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부패 국가인 것으로 조사됐다. 티에리 버쿨론 국제위기감시기구(ICG) 중앙아프리카부문 책임자는 “은쿠룬지자 대통령은 첫 번째 임기에서 집권당 내 입지를 공고화하고, 두 번째 임기에선 각종 기관을 장악하며 세 번째 임기 연장을 시도하고 있다”며 “부패가 만연한 부룬디에서 이를 달성하는 것은 꽤 쉬운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칙 바로 선 ‘새 정치’ 찾으려는 움직임

내전의 참극 이후 들어선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 역시 부패와 무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자, 국민들은 원칙이 바로 선 정치를 수립하기 위해 굳건하게 맞서고 있다.

실제로 시민사회단체는 니욤바레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시위를 재개했다. 시위대는 15일 쿠데타 실패 소식이 전해진 뒤 곧장 수도 부줌부라 가두로 진출,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격렬하게 대치했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사회단체의 대표 바이탈 은시미리마네는 AFP에 “부룬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많은 국민이 쿠데타 기도를 환영한 것에 주목한다”면서도 “쿠데타 실패를 아랑곳 하지 않고 시위를 재개하기 위해 부룬디 국민이 다시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 피난민들의 우려와는 달리 이번 사태가 민족간 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북유럽아프리카연구소(NAI)의 수석연구원 제스퍼 브잘네센은 “이번 사태는 민족간 갈등에서 비롯됐던 이전 사태와는 다르다”며 “이번 소요는 정치 원리와 관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부줌부라를 방문한 브잘네센은 부룬디의 젊은 운동가들과 만난 이야기를 전하며 “그들은 2005년 평화 협정이 맺어진 지역인 탄자니아 아루샤를 본 따, 스스로를 ‘아루샤 세대’로 칭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화협정을 직접 목격한 이들에게 종족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고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가장 큰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최근 지속가능개발목표(SGDs) 연구를 담당하는 유엔 관계자들도 “향후 15년 간 부룬디가 경험할 이슈의 대부분은 민주주의와 법에 의한 통치, 정의, 평등이지 종족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민주주의 발전 시험대로 평가

부룬디 이웃 국가들은 이번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임기를 연장하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 독재정권들은 부룬디에 영향을 받아 자국에서 ‘아프리카의 봄’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며 긴장하고 있다.

은쿠룬지자와 마찬가지로 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도 2회 중임으로 제한한 임기를 늘리려는 시도 중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랫동안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우간다의 요웨리 무세비니는 이미 헌법을 수정해 놓은 상태다. 감비아와 토고 등 다수 국가는 대통령 임기 제한이 아예 없다. 지난해 5선 연임을 위해 헌법 개정을 시도하다가 권좌 밖으로 내몰린 부르키나 파소의 블레즈 콩파오레 전 대통령 사례가 있어 긴장감은 더욱 높아진 상태다.

부룬디 사태 이후 서아프리카 정상들은 대통령 임기와 관련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달 말 정상회담을 열고 대통령 재임기간을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감비아와 토고 등 대통령 임기 제한이 없는 국가들의 열렬한 반대로 관련 논의는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폐쇄적인 아프리카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는 상당히 진보적인 시도였다고 가디언은 평가했다.

동시에 아프리카 각국 국민들이 부룬디에 영향을 받아 민주화 발전을 위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브잘네센은 “부룬디 시위대는 브루키나 파소의 전례처럼 ‘아프리카의 봄’을 깨우려는 시도 중”이라며 “합법적, 불법적 수단을 모두 동원해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정권에 맞선 대중의 힘이 아프리카 전역에서 펼쳐질지 모른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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