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토할 것만 같은 기침, 술 취한 놈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몸살. 날카로운 손톱이 폐를 쥐어뜯는 것 같은 통증. 잠을 이루지 못한 지도 열흘이 넘었다. 의기양양하게 세계일주를 시작한 지 석 달 만에 이 꼴이 되다니. 밤새 발작하듯 쏟아내는 내 기침소리가 여관의 영업 장애라도 되었던 걸까. 숙소 주인이 나를 병원으로 끌고 갔다. 정 많은 한국인 아저씨라 그런 오지랖을 발휘했을 것이다.

동네의 병원은 허름한 시설과 털털한 의사의 태도가 맞춤으로 어울렸다. 풍채 좋은 의사가 장검만한 주사를 내 팔에 꽂았다. 병원의 시설을 봐도 그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듯 했다. 빈 침대에 누워 있다가 몇 시간 후에 내 발로 일어나 돌아왔다. 사나흘 더 기침과 고열에 시달린 후 증세는 시들어갔다. 중국 윈난성의 작은 마을 따리에서였다. 며칠 후 정신을 차린 내가 오랜만에 메일함을 여니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라는 단어가 창궐하고 있었다. 그 동네에서는 아무도 그런 단어를 알지 못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건 한 달 후 중국을 떠날 무렵이었다.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사스 환자수를 속여왔음을 인정한 날이었다. 거리는 유령도 겁을 낼 만큼 텅텅 비었고, 국경의 이민국 직원들은 유니폼처럼 흰 마스크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2003년 봄, 나는 중국에서 사스에 걸렸던 걸까.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중국에서만 700명이 넘는 사스 사망자가 나온 건 환자수를 축소하는 식의 정보 조작과 통제의 탓이 컸다는 점이다.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또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시골 마을에서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케냐를 거쳐 탄자니아까지 험하기로 악명 높은 국경을 넘느라 녹초가 되었던 터였다. 좀 심한 감기몸살이겠거니 했다. 이번에도 숙소의 주인이 동포애를 발휘했다. 그 나라에서 20년을 산 한국인 아줌마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개업 후 첫 손님을 맞는 식당 주인처럼 살갑게 나를 맞아준 흑인 의사. 피검사를 마친 후 만면에 미소를 띠고 경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말라리아에 걸렸네요!” 10년을 기다린 임신 소식을 전하는 것 같은 어조여서 나도 모르게 답했다. “땡큐 베리 머치!” 그 날은 마침 내 생일이었다. 잊지 못할 생일선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챙겨 다음날 바로 4박 5일의 야생동물 사파리를 떠났다. 약이 독하니 간이 상하지 않도록 잘 먹어야 한다는 의사의 당부를 나는 충실히 따랐다. 끼니 때마다 식판을 두 번씩 비우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 몸은 이번에도 말라리아를 견뎌냈다. 개발이 덜 된 나라들 위주로 돌아다니느라 엄청난 면역력이 길러진 걸까. 아니면 항간에 소문이 자자한 김치의 효력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적절한 시기에 병원을 찾아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지인이라면 나처럼 쉽게 병원에 접근할 수 있었을까. 치료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가 아프리카에서 유독 치사율이 높은 건 공공병원에의 접근성을 비롯한 열악한 보건의료 시스템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중국 시골 마을에서도, 탄자니아의 촌구석에서도 살아남았던 내가 다시 낯선 나라에서 위험에 처했다. 낙타라고는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나라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의 공포와 맞서고 있다. 이 나라의 수도를 걷다 보면 2003년 봄의 중국에 와있는 것 같다.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고, 병원이 텅텅 비고,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시민들로 가득하다. 짧은 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문맹률은 제로에 가까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고 자축하던 나라였다. 사스 사태 때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사스 예방 모범국'이란 평가를 받았던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12년 전 중국 정부의 미숙한 모습과 열악한 인프라를 지닌 탄자니아가 오버랩 되고 있다.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정보 통제, 불안해하는 국민을 상대로 한 협박과 검거의 과잉 단속, 그로 인한 혼란과 공포의 확대. 지난 몇 년간 이 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메르스가 창궐하는 한 이제 이 나라 국민들은 다른 나라의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특별대우를 받게 생겼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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