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라구아디아 판결과 장발장은행

입력
2015.06.05 17:45
0 0

미국의 대공황 시절 피오렐로 라구아디아 판사의 명판결은 오랫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자주 인용된다. 그가 뉴욕지방법원 판사로 있을 때 한 할머니가 절도죄를 저질러 법정에 섰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딸이 남편과 이혼한 뒤 병들어 누워있고, 손자들이 굶주리며 울고 있어 빵을 훔쳤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라구아디아 판사는 진술을 들은 뒤 할머니에게 벌금 10달러를 내라고 했다. 어쨌거나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방청객들을 향해 할머니뿐 아니라 할머니가 빵을 훔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이웃들도 벌금을 함께 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는 먼저 자신이 10달러를 내고 방청객들에게 50센트씩을 걷어 벌금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할머니에게 주었다. 눈을 가린 채 저울과 칼을 든‘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가 눈가리개를 풀고 눈물을 보인 셈이다.

이‘라구아디아 판결’은 대공황에 찌들려 있던 미국 국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다. 라구아디아 판사는 이후 뉴욕시장을 세 차례 역임했다. 그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미국 정부는 뉴욕의 국제공항과 예술학교에 그의 이름을 붙여 그를 기리고 있다. 라구아디아 공항과 라구아디아 예술학교가 그것이다.

엊그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국회를 방문했다.‘장발장은행’의 일일 은행장 자격으로 간 것이다. 염 추기경은 이 자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사소한 범죄를 저질러도 벌금을 미납하면 징역형을 살게 하는 현행 벌금제도의 개정을 호소했다. 추기경이 법개정을 위해 국회를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는 “개인적인 안락 추구와 무관심의 일반화가 가난한 이에 대한 책임까지 미약하게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담화문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어선 그들이 다시 한 번 정의로운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씨가 설립한 ‘장발장은행’은 벌금을 마련하지 못해 노역을 살게 된 사람들에게 무이자ㆍ무담보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취지에서 지난 2월에 발족했다. 거치기간은 6개월, 1년에 걸쳐 분납하면 된다. 장발장처럼 배가 고파 먹을 것을 훔친 이를 비롯, 단순절도나 폭행, 도로교통법위반 등으로 100만원 안팎의 벌금을 내지 못한 사람들이 주고객이다.

벌금형의 경우 한달 내에 일시불로 완납하지 않으면 노역형 처분을 받는다. 결국 가난 때문에 감방에 가는 것이다. 2009년의 경우 이런 사람이 4만3,199명이나 됐다고 한다. 그래서 ‘43199 캠페인’이 시작됐고 장발장은행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장발장은행 인터넷홈페이지에는 “적어도 가난이 곧 교도소인 사회를 조금이라도 고쳐보자, 소득불평등이 곧 형벌불평등인 사회를 넘어서보고자 무담보ㆍ무이자 인간신용은행을 시민들이 나서서 설립키로 했다”고 설립취지가 소개되어있다.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절규했던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와도 상통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지금 우리사회는 빈부격차와 소득불평등 문제가 크다. 특히 경제가 성장을 지속할 때는 과실이 사회적 최약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돌아가는 윈윈(win-win)상태가 유지된다. 하지만 성장이 둔화되거나 멈추면 곧바로 가진 자가 유리한 제로섬(zero-sum) 국면으로 돌아선다. 이미 1997년 외환위기 때 경험했듯, 이 때가 사회적 최약자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유사‘송파 세 모녀 사건’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늘 성장에 목매지만 세계 경제의 흐름 상 기대난망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는 이미 성장 없는 장기침체 국면에 돌입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우리 경제연구소들도 관련 심포지엄을 열어 이 같은 추세를 정부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성장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수단일 뿐, 목표는 아니다. 따라서 장기침체 국면에서는 성장보다 불평등해소가 급선무다. 그래서 생존의 한계선상을 넘나드는 사회적 최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웃의 돈을 걷어서 주는 ‘라구아디아의 지혜’가 시급한 것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