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탐욕과 협잡을 다룬 영화 중에서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스트리트’(1988)는 전형적이다. 오랜 역사에도 변화에 뒤처져 문을 닫을 처지에 빠진 항공사 ‘블루스타’를 먹이로 한 악덕 투기꾼의 머니게임이 소재다.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는 블루스타 지분을 헐값에 인수한 뒤, 직원 대량해고를 비롯해 일체의 저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회사야 어떻게 되든 일단 주가를 높인 뒤 되팔아 한 몫 챙기려는 음모다.
▦ 신참 증권맨 ‘버드(찰리 쉰)’는 일확천금의 욕망을 좇아 스스로 게코의 하수인이 되어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블루스타 음모를 깨닫고는 환멸을 느껴 맞선다. 자신의 아버지가 평생 땀 흘려 일했고, 그 월급으로 자신이 자랄 수 있었던 블루스타는 대주주가 된 투기꾼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의 혼이 서린 신성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감독이 게코와 버드를 통해 드러낸 건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와 ‘이해당사자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와의 충돌이다.
▦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는 기업이 자본주(주주)만 아니라, 직원과 가족, 보다 넓게는 사회의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최선의 경영은 단순히 수익을 많이 내는 걸 넘어 모든 당사자의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주주자본주의는 주주만의 이익을 최우선 하는 월스트리트식 관점이다. 당장 주가를 올리고 배당을 늘리는데 주력한다. 기업의 공동체적 가치나 고용 같은 문제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 월스트리트에선 막강한 투자자가 특정 회사의 지분을 매집해 대주주 지위를 확보한 후, 회사에 단기 수익성만을 높일 결정을 압박해 주가를 올린 뒤 매매차익을 먹고 튀는 행태가 보편화했다. 점잖게 주주자본주의에 입각한 ‘행동주의 투자(Activist Investment)’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알박기’식 투기에 가깝다. 국내에서도 칼 아이칸과 소버린펀드가 과거에 악명을 떨쳤다. 최근 삼성물산 주식 7% 남짓을 매집한 뒤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시비를 걸고 나선 미국계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도 같은 부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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