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방울 등 병실에 고농도로 축적
에어컨이 흡입 뒤 다시 내뿜어
5일까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환자 41명 중 30명을 발생시킨 경기 평택성모병원의 대량 감염사태는 부실한 병원내 배기ㆍ환기 시설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보율 메르스 민간합동대책반 역학조사위원장(한양대 교수)은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검체 조사 등을 벌인 결과 최초 환자가 입원한 평택성모병원의 병실은 미닫이문에다가 에어컨만 있고, 환기구ㆍ배기구가 없어 비말(침이나 가래 등 입자가 큰 분비물)이 오래 축적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15~17일 이 병원에 입원했던 최초 환자 A(68)씨가 기침을 하면서 튀어나온 침방울, 바이러스에 오염된 환자복에서 떨어진 먼지가 환기되지 않은 채 병실에 고농도로 쌓여있다가 이를 빨아들인 에어컨이 찬 공기를 배출하면서 바이러스를 가스(에어로졸) 상태로 또 다시 내뿜게 되면서 대량 감염 사태를 야기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가벼운 에어로졸 상태가 된 침방울 입자 등은 멀리까지 쉽게 도달할 수 있다. 또 병원 내 환자 손잡이 등 다른 환경검체에서도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다만 보건당국은 이 같은 정황이 메르스의 공기감염 가능성을 암시하는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최보율 위원장은 “메르스 비말의 이동 가능 거리는 기존에 알려진 대로 반경 2m”라며 “5개 병실의 에어컨 필터 중 3개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발견됐지만 또 다른 감염자가 에어컨과 가까운 거리에서 기침 하면서 묻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건당국이 메르스 에어로졸 전파 실험을 진행하기로 한 만큼 공기감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또 최초 환자가 입원했던 병동에 근무하던 의료진 2명이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미뤄 이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퍼져나갔을 가능성 또한 높게 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15~29일 사이 이곳에 있었던 환자ㆍ의료진ㆍ방문자 모두를 추적 조사해 격리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소 6일에서 최장 20일 동안 보건당국의 감시망 밖에 있었던 이들이 이미 감염을 더욱 확산시켰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이번 전수조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초 환자 발견과 추적격리가 늦어져 사태를 조기에 차단하지 못했다”며 “평택성모병원 원내 접촉자의 감염률이 높아 병원 내 모든 접촉자를 빨리 발굴할 필요가 있어서 병원 이름을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병원 비공개 방침을 고수해왔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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