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소송 낸 뇌종양 변호사, 뉴질랜드서 존엄사 입법 공론화
“존엄사를 허용치 않겠다는 법원 판결문을 읽어줬을 때, 아내는 깊이 상처받고 실망한 것 같았습니다. 그 눈빛은 마치 ‘이건 내 몸이고 내 삶인데?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고는 천천히 숨을 내쉰 뒤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이 반응이 저의 가슴을 찢어지게 합니다.”
고통스러운 연명치료 대신 스스로 죽음을 택하겠다며 법정투쟁을 벌였던 뉴질랜드 변호사 레크리우스 실즈(42)가 5일 숨진 뒤 남편 매트 비커스가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읽어내려 간 성명서의 일부다.
죽음을 앞두고 벌인 법정 투쟁의 결과는 전날 오후 4시 실즈 가족에게 전달됐다. 남편에게 판결 결과를 전해 들은 실즈는 그날 밤 11시 30분 무의식 상태에 빠졌고 이날 낮 12시 35분 숨을 거뒀다. 비커스는 “이제 법원이 아니라 의회에 호소한다”면서 “존엄사 인정 문제를 논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실즈는 총리실과 법무부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는 능력 있는 법률가였다. 뇌종양 판정은2011년에야 받았다. 이미 종양이 뇌의 25%를 차지하고 있어 기껏해야 몇 주 정도 더 살 수 있다는 암울한 진단이었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가 반복되는 고통의 시간이 흘렀다. 삶을 움켜쥐려는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 병원은 늘 종양이 다시 자랐다는 얘기만 했다. 해법은 없었고 고통만 있었다. 치료와 고통 모두 끝내고 죽음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물론, 어머니 셜리 실즈도 동의했다.
문제는 그럴 경우 주치의가 살인죄나 살인방조죄로 최고 징역 15년형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난 3월 존엄사를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실즈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 선 인간으로서, 삶의 여정을 언제 끝낼 것인지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그 권리는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나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패소였다. 데이비드 콜린스 판사는 실즈의 상황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복잡한 법적, 철학적, 도덕적, 의학적 문제들이 제기되어 있는 만큼 이번 사건은 법원 판결이 아니라 의회 입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즈의 죽음을 계기로 뉴질랜드 정치인들은 앞다퉈 존엄사를 인정하는 입법 작업을 서두르겠다고 약속하기 시작했다. 실즈의 자연사가 뉴질랜드의 존엄사 도입을 앞당기는 모양새다. 그러나 반대단체들은 여전히 존엄사 도입을 거부하고 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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