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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시대 끝나도 평화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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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시대 끝나도 평화는 오지 않는다

입력
2015.06.0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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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

타인·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이 비극의 뿌리

드론의 등장으로 대규모 전투부대는 필요 없어졌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건 더 파괴적인 전쟁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요원. CIA의 쿠바 침공 작전 실패 후인 1962년 존 F 케네디가 창설한 이 부대는 2011년 5월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처단하며 다시 유명해졌다. 열린책들 제공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요원. CIA의 쿠바 침공 작전 실패 후인 1962년 존 F 케네디가 창설한 이 부대는 2011년 5월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처단하며 다시 유명해졌다. 열린책들 제공

‘평화란 인간의 자연 상태이고, 인간은 원래 선한데 소유와 거주, 진보 때문에 타락했을 뿐이라는 루소의 비장한 주장은 가소로울 정도로 잘못된 말이다.’

독일 언론인이자 작가인 볼프 슈나이더가 50년에 걸쳐 군인과 군대에 관한 3,000년 인류역사를 통찰한 결론이다. 쥐와 함께 동족을 사냥하는 유일한 생물인 인간에게, 군인은 인류의 영웅이자 희생자였으며 괴물이었다고 말이다.

군인은 전쟁을 무대로 나타난 존재이기에 군인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와 대부분 겹친다. 저자는 우선, 전쟁은 루소의 저 가소로운 주장과 달리 인간 본연의 야만성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뉴기니 섬의 왈라루아족은 인간과 동물, 이런 식으로 구분한 것이 아니라 왈라루아 족과 비(非)왈라루아 족으로 구분하면서 비왈라주라 족을 동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도 이런 의식은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표현이, 기실 자신과 다른 인간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 뿌리 깊은 배타의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1950년대에 동서로 갈라진 서독과 동독이 재무장에 나서자 독일인들이 ‘독일인이 독일인에게 총을 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걱정했는데, 그런 말 속에는 독일인이 프랑스인이나 폴란드인, 혹은 러시아인에게 총을 쏜다면 훨씬 덜 끔찍할 거라는 가정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타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면 동물처럼 사냥할 수 있다. 저자는 구석기 시대부터 최소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1945년까지 무수한 민족이 자신들의 우월의식으로 전쟁을 벌인 증거자료가 ‘지천에 흘러넘친다’고 지적한다. 인간이 인간을 대량살상하는 ‘인간 사냥’은 7,000년 전 인간의 정착 문화와 함께 시작됐다. 또 다른 전쟁의 한 양상인 일대일 결투는 기원전 1,000년 경 장군 골리앗이 수백만 군인 대신 소년 다윗과 벌인 결투가 기원이다. 이 두 가지 양상은 각각 현대의 총력전과 제한전으로 연결된다.

'군인' 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발행·548쪽·2만5,000원
'군인' 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발행·548쪽·2만5,000원

자발적으로건 강제적으로건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몰기 위해서는 거짓과 환상이 필요했다. 통치자들은 때론 조국과 종교의 이름을 빌렸고, 군대는 혹독한 훈련과 규율로 이 젊은이들을 쓸만한 군인으로 만들었다. 칭기즈칸은 기마대를 십진법에 따라 분대 10명, 중대 100명, 연대 1,000명, 군단 1만명으로 편성했는데, 한 사람이 도주하면 분대 전체를 처형했고, 승리하기 전에 약탈하는 자도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규율이 채찍이라면, 훈장은 당근 역할을 했다. 군인의 인정에 대한 갈망과 명예욕을 충족시키는 훈장은 죽은 적에 대한 약탈과 신체 절단을 금지한 인류 문화 발전의 산물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알았던 군인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대표적인 근거는 무인 전투기(드론)다. 드론을 운용하는 데는 전자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자로도 충분하다. 적을 찾는 것은 위성항법장치(GPS)와 고성능 레이더이며, 파일럿은 위성 신호를 이용해 드론에 사격 신호를 전달한 뒤 폭탄이 터지는 것을 영상으로 지켜보면 그만이다. 일본에서 20만명을 죽인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데는 군인 세 명만 필요했다. 지구 곳곳에서 터지는 테러를 막는 데 대규모 전투부대는 더 이상 소용 없다.

저자는 그러나 ‘군인 시대가 끝나도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에도 인간은 갈등을 힘으로 해결하려 들 것이고, 지금보다 더 파괴적이고 복구 불가능한 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저자가 내놓은 해법은 ‘삶에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말라’는 것. ‘독일어의 교황’으로 꼽히는 저자의 유려한 문장이 다소 힘 빠지는 결론으로 끝나는 것은 이 책의 유일한 아쉬움이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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