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탐사보도 전문기자 제닝스… 비리 추적해 수사 단서 제공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삯이 있고 누군가 재워준다면 법정으로 가서 ‘이봐, 참 오래들 해먹었어. 안 그런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국제축구연맹(FIFA)의 비리가 미국 사법당국의 수사로 드러난 배경에 영국 노기자의 집념 어린 취재 노력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3일 제프 블라터 회장을 비롯한 FIFA 비리 의혹을 15년간 취재해온 영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앤드루 제닝스(71)의 인터뷰를 싣고 그의 노력을 집중 조명했다.
스코틀랜드 태생인 제닝스는 1980년대 경찰 부패와 태국의 마약거래, 이탈리아 마피아 등의 조직 범죄를 파헤치며 탐사보도 기자로 명성을 날렸다. 선데이타임스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제닝스는 BBC에서 런던 경찰국의 비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주지 않자 자리를 박차고 나와 그라나다TV ‘월드 인 액션’ 제작팀으로 옮겼다.
당시 ‘월드 인 액션’ 제작팀 동료이자 훗날 블록버스터 영화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의 감독이 된 폴 그린그래스에게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취재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 스포츠로 관심 영역을 옮긴 계기였다. 그는 “(그린그래스의 제안에)처음엔 ‘그게 뭔데’라고 말했다”면서 “IOC를 취재하면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이 (스페인 독재자)프랑코를 따른 파시스트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을 둘러싼 뇌물과 약물 스캔들에 관한 책을 내며 스포츠 탐사기자로서 명성을 얻은 그의 다음 타깃이 블라터 회장이었다. 그는 2002년 블라터 재선 후 처음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당신은 뇌물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제닝스는 인터뷰에서 “도덕관념이 있는 내부 직원들에게서 몰래 정보를 얻어야만 했다”면서 “기자회견에서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 IOC의 비리를 보도한 것처럼 여기서도 똑같은 일을 하겠다’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닝스는 기자회견 6주 뒤 FIFA 관계자로부터 막대한 양의 내부 자료를 넘겨받아 블라터 회장이 비밀리에 수십만 달러의 보너스를 자신에게 지급하고, 개인 전용기를 구입하는 등 호화 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제닝스가 2006년 ‘파울! FIFA의 비밀세계:뇌물, 투표조작, 티켓 스캔들’이라는 책을 펴내자 블라터는 고소하겠다고 협박했고, 최근 기소된 잭 워너 전 부회장은 그에게 침을 뱉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다.
제닝스는 2009년 전직 정보기관원 소개로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게 FIFA와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비리 자료를 넘겨줌으로써 이번 수사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FIFA 간부들이)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쓰레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쓰레기들은 대중의 스포츠를 훔쳐갔다”면서 “그들의 재판을 직접 보고 싶다”고 말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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