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양상 97년 경제위기 전야와 흡사
정부 경상수지ㆍ금리 등 환율 관리 실패
신속한 대책 없인 국가 위기 가능성도
현대차가 일본 도요타를 바짝 추격하며 굴지의 글로벌메이커로 도약하는 데는 1995년 상반기의 엔고(円高)가 큰 도움이 됐다. 그 이전 미국 소형차 시장은 일제차들이 주름잡고 있었다. 도요타의 ‘터셀’을 비롯해 혼다 ‘시빅’, 닛산 ‘센트라’ 같은 차종들이 현지 매장의 중심을 차지했다. 그래서 94년 말 현대차가 ‘엑센트’를 최초로 미국에 출시할 때만해도 마치 골리앗에 도전하는 다윗 같았다. 그 결정적 시점에 엔고 돌풍이 불었다.
당시 미일 간 ‘자동차 전쟁’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미국의 요구는 일제차가 미국에서 팔리는 것에 비례해 미제차와 부품도 일본에서 팔리도록 인위적 구매쿼터라도 정하자는 어깃장이었다. 미국은 플라자합의(85년) 이래 일본 경제를 압박해온 엔화 가치의 상승세, 엔고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막판 고사(枯死) 작전을 벌였다. 그 결과 엔ㆍ달러 환율이 그 해 4월 전후 최저치인 달러 당 79.75엔까지 급락하기에 이르렀다.
엔 급등세는 ‘엑센트’에겐 그야말로 천군만마의 원군이었다. 당시 미국 시세로 1만 달러 이하 소형차 판매는 가격에 좌우됐다. 그런데 그 해 초 ‘엑센트’가 8,079 달러일 때 8,958 달러였던 도요타 ‘터셀’의 미국 판매가격이 엔고로 불과 4개월 만에 10%나 오른 9,998 달러까지 치솟았다. 약 2,000 달러의 가격경쟁력이 ‘엑센트’ 대박 신화로 이어졌다. 초엔고 순풍을 탄 건 현대차뿐만 아니었다. 반도체, 가전, 유화, 조선 등 우리의 다른 수출 기업들도 몽골 기병 같은 맹렬한 기세로 세계를 누비며 일제히 일본을 넘보는 글로벌메이커로 부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정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미일자동차협상이 타결되자마자 엔화는 가공할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강(强)달러 정책으로 돌아선 미국과 초엔고 탈출에 사활을 걸었던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79.75엔이 저점이었던 엔ㆍ달러 환율은 외환위기 직전인 97년 중반 달러 당 130엔 대까지 치솟았다. 그 2년이 우리 경제에는 재앙의 쓰나미가 됐다. 환율 역풍이 불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매출이 급감할 뿐 아니라, 영업이익률도 함께 추락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엔저 호황을 믿고 막대한 투자에 나섰던 기업들부터 차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보가 무너지고 기아가 침몰하며 97년 경제위기를 맞게 됐다.
요즘 엔저 양상이 우리 경제를 단숨에 위기의 늪에 빠트린 95년 중반 이후의 엔저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그 때 시작된 엔저는 98년 중반까지 3년간 엔ㆍ달러 환율을 72.8%나 밀어 올렸다. 이번 엔저도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2013년 이래 최근까지 약 2년 반 동안 엔ㆍ달러 환율을 58% 이상 끌어 올리고 있는 중이다. 90년대 이래 엔화는 4번의 등락세를 보였지만, 이토록 장기간 빠르게 하락한 예는 없다.
물론 과거엔 원ㆍ엔 환율이 800원 밑으로 간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원화가 ‘나 홀로 강세’를 띠는 상황과 맞물린 엔저라 문제가 오히려 더 심각할 수 있다. 연초 이래 5개월 내리 뒷걸음질 치고 있는 수출,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 급감 쇼크, 고사 직전까지 몰린 조선ㆍ해운산업 등 요즘 우리 경제에 닥친 위기엔 어쨌든 엔저를 포함한 원화의 대외 환율 문제의 그림자가 짙다.
내수 부양도 좋고, 구조개혁도 마땅히 옳다. 하지만 경제정책이 그런 과시적인 이슈에 매몰돼 환율관리 같은 핵심문제를 놓친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감을 떨치기 어렵다. 경상수지만 해도 대책 없이 방치하는 바람에 막대한 경상흑자가 원화의 ‘나 홀로 강세’를 야기하는 악순환의 덫에 빠졌고, 금리는 이제 내리지도 높이지도 못하는 엉거주춤의 덫에 빠진 셈이 됐다.
97년 경제위기 때도 정부는 발 밑이 꺼지는 줄도 모른 채 구조조정만 외치다 무너졌다. 지금은 엔저 쓰나미가 목전까지 닥쳐온 상황이다. 경상수지든 금리든, 신속하고 정확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대단히 크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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