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발데사리 최신작 15점 전시
강홍구 '우리가 알던 도시'전
미술작가에게 사진은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다. 예술을 표현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재해석될 수 있음을 회화 전공인 존 발데사리와 강홍구가 보여주고 있다.
미국 개념미술의 선구자라 불리는 존 발데사리는 1960년대부터 사진을 찍어놓고 그 아래 사진의 내용과 동떨어진 텍스트를 적어놓는 작업으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했다. 1970년 그동안의 작품활동을 스스로 부정하며 자신의 회화를 모두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였던 발데사리는 84세가 된 지금 사진을 물감으로 뒤덮는 방식으로 새로운 회화를 창조해냈다.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7월 12일까지 열리는 발데사리 개인전(02-734-9467)에서 그의 최근 작업을 볼 수 있다.
발데사리의 최신작 15점은 사진을 디지털 인쇄한 후 중요한 피사체들을 진한 아크릴 물감으로 덧칠해 대략적인 형태만 남겨놓았다. 신문ㆍ잡지에서 발췌한 사진, 영화의 한 장면, 19세기의 명화 등이 원형을 잃고 캔버스 위를 떠돈다. 발데사리는 불투명한 아크릴 물감으로 핵심적인 부분을 가렸다. 그냥 사진에서는 눈여겨 보지 않았을 주변 배경을 주목하게 하거나 물감으로 가려진 것의 정체를 상상하게 한다. 자신의 그림이 ‘지루하고 뻔한’ 작품이 아니라 최대한 다양한 상상을 촉발시킬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의도한 것이다.
강홍구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2인 사진전 ‘우리가 알던 도시’(02-2188-6000)에서 2000년대부터 찍기 시작한 도시 재개발을 주제로 한 거대한 파노라마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폭 6m, 높이 2m에 이르는 ‘그립-불광3구역’은 2010년 북한산 서쪽 불광동 재건축지대를 촬영해 인쇄한 사진이다. 사진 속 노란 개나리, 하늘색과 주황색 지붕, 벽에 붉은 스프레이로 ‘빠른 이주가 최선?’이라고 쓴 낙서 등은 강홍구가 물감으로 칠한 것이다. 그의 붓질은 회색빛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철거촌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는 “이런 집이라도 남겨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억이 나는 대로 물감을 칠했다”고 설명했다.
회화 전공인 강홍구는 “나는 사진을 찍지만 내 작품은 사진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작품은 사진 여러 장을 어설프게 합성한 흔적이 명백히 드러나고 물감도 깔끔하게 칠하지 않고 조금씩 번져 나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의도다. 그는 이것을 “현실의 재현이 아닌 기억 속 이미지의 재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알던 도시’에서 강홍구와 함께 전시하는 박진영은 정통 사진작가다. 한 작가는 사진에 충실하게, 다른 작가는 사진 위에 물감으로 자신을 표현을 하려 하지만 공통점은 폐허를 응시한다는 것이다. 강홍구가 철거촌을 찍었다면 박진영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폐허를 찍었다. 두 사람은 버려진 도시에 남아있는 삶의 흔적을 포착하고 기록함으로써 대상을 향한 짙은 연민을 드러낸다. 전시 10월 11일까지.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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