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가 한국을 덮쳤다. 3일 오후 현재 정부가 공식 집계한 확진 환자는 30명(사망2명·3차감염자 3명)으로 전날에 비해 5명 늘었다. 정부의 안일한 판단과 주먹구구식 대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의 주요 논란을 되짚어봤다.
1. 골든타임 36시간 놓친 정부
지난달 20일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첫 메르스 감염 환자 발생 사실을 확인했다. 최초 발병한 A(68)씨는 지난달 4일 바레인에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7일 만에 발열 등의 증상을 호소하다가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문제는 보건 당국이 ‘메르스 방지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점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1일 "첫 환자인 A씨를 진료한 병원 측이 지난달 18일 오전 질병관리본부에 메르스 감염 여부 확인을 요청했지만, 바레인은 메르스 위험 국가가 아니라며 대신 다른 12가지 호흡기질환 여부를 검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질병관리본부는 지난달 19일 오후 8시께 검사에 착수했고, 다음날인 20일 오전 확진 판정을 내렸다. 보건 당국이 초기 36시간을 허비하고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잠복기 접촉자 추적은 물론 대책 마련이 늦어졌다는 지적이다. (▶기사보기)
2. 메르스 환자 중국행 방치… 망신 자초
국가방역망은 허술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의심환자로 자택에 격리 중이던 B(44)씨가 지난달 26일 중국으로 출국까지 했음에도 이 남성의 존재 여부를 전혀 모르고 있었고, 출국 다음 날에야 감염 의심자임을 파악했다. 질병관리본부는 "B씨는 첫 확진 환자와 같은 병실에서 지냈던 아버지를 병문안 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초기 역학조사 과정에서 B씨의 가족들이 B씨의 병문안 사실을 알리지 않아 파악이 어려웠다"고 변명했지만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궁색해졌다. B씨가 중국에서 재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B씨가 거쳐간 홍콩과 중국은 메르스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사보기)
3. 첫번째 사망 여성… '방치된 6일'
정부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얕본 사실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지난 1일 사망한 C(58·여)씨의 경우 증상이 발현된 후 6일 동안이나 보건 당국의 통제와 치료를 받지 못했고, 사망 후에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C씨는 최초 환자가 입원한 병원의 같은 병동에서 생활해 감염 의심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사태 초기 최초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쓴 사람만 관찰자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C씨는 관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때문에 보건 당국은 뒤늦게 C씨의 소재 파악에 나섰고, 사망 당일인 1일에야 경기도의 한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방역 구멍이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켰다는 비난을 자초하는 대목이다. 결국 보건 당국은 C씨 사망 다음 날, 유전자 검사를 통해 메르스 양성 반응을 확인했다. (▶기사보기)
4. "괴담 차단" 한다더니 괴담 키우는 정부
메르스가 빠르게 파지면서 국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찌라시' 등을 통해 발병 병원과 환자에 관한 허위 정보가 난무하거나 공기감염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유언비어가 일파만파 퍼지자 정부는 '괴담' 차단에 나섰다. 반면 보건 당국이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오히려 괴담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병원에 대한 불신 해소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발병 병원과 지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인터넷과 SNS에서는 병원 명단과 신상 정보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병원이 공개될 경우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뒤따른다며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기사보기)
5. 우왕좌왕 복지부… 궁지 몰린 문형표
보건 당국의 우왕좌왕이 계속되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메르스 확산 과정에서 초동 단계 대처가 미흡했을 뿐 아니라 관리 부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복지부는 질병관리본부장이 주재하던 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복지부 차관에게 맡기는 등 모든 자원을 동원해 방역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나 기본적인 격리 조치 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었다. 지난 2일, 문 장관은 차관이 맡던 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을 장관이 직접 맡으며 강력한 대응책을 발표했지만, 사실상 다를 바 없는 이야기만을 되풀이 하면서 국민들 불안을 가중시켰다. (▶기사보기)
6. 허술한 관리 재확인… 부처끼리도 엇박자
3일 오후 현재 메르스 의심 관련 격리자는 천여명이 훌쩍 넘었지만, 정부의 방역망은 여전히 허술하다.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의 모 병원에선 감염 의심 의료진이 격리상태에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자가 격리자가 타 지역으로 이동해 골프장 라운딩을 즐기는 경우까지 확인됐다. 시민들의 불안이 높아지자 경기지역에서는 휴교령을 내린 학교가 늘어났다. 교육부 역시 예방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휴업을 결정하도록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보건 당국은 이런 결정이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결국 정부 부처가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아 시민들의 혼란만 부추기는 꼴이 됐다. (▶기사보기)
7. 발병 확인 14일 만에 국민 앞에 선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발병 확인 이후 14일 만에 국민 앞에 섰다. 박 대통령은 3일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메르스 관련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전문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진원지와 발생경로 등을 분석·진단해 그 내용을 국민께 알리겠다"고 말했다.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선 청와대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그동안 청와대는 메르스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국회법 개정안'에 관심을 쏟아왔다. 정치권에서는 '컨트롤타워'없이 보건복지부에만 대응을 맡긴 박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메르스 방지 긴급대책반이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면 이번 사태가 사회적 공포 수준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거란 지적이다. (▶기사보기)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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