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건설한 왕국은 결국 돈 때문에 무너졌다.
부패의 몸통이라는 의혹 속에 2일(현지시간) 사퇴한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돈의 힘을 앞세워 17년간 '세계 축구계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축구가 아닌 스위스 아이스하키연맹 사무국장으로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블라터가 축구계의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FIFA 회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돈의 위력이었다.
1998년 FIFA 회장 선거는 레나르트 요한손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의 당선이 유력했지만, 약체로 분류됐던 블라터는 예상을 깨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FIFA 주변에선 블라터가 표를 얻기 위해 돈을 뿌렸다는 의혹이 확산됐지만 FIFA 내부에서 회장으로 등극한 블라터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FIFA의 불투명한 운영시스템은 회장이 된 블라터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블라터는 천문학적인 FIFA의 수익금 중 일부를 회원국 축구협회에 '축구발전 보조금' 형태로 나눠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지세력을 확장했다. 블라터 지지세력 중 일부는 보조금을 착복했고, 블라터는 이를 못본척했다는 것이다.
블라터는 2002년 재선에 성공한 뒤 임기를 1년 연장했고, 2007년 단독 출마해 3선에 성공하면서 장기집권체제의 기틀을 마련했다.
블라터는 2011년에 4선에 성공했다.
당시 선거에서 모하메드 빈 함맘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블라터의 표밭인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임원들을 매수하려던 사실이 드러나 후보에서 사퇴했다. 결국 블라터는 손쉽게 4선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블라터 체제가 계속되면서 FIFA 안팎에서 각종 의혹과 추문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뇌물이 오고갔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도 CONCACAF 집행위원들에게 1천만 달러(110억원)가 건네진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다양한 의혹 속에서도 5선 도전을 선언한 블라터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 수사당국은 스위스와 공조해 FIFA 총회 직전 FIFA 집행위원 등 고위직 7명을 체포하고, 14명의 축구계 인사를 무더기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블라터는 5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블라터 회장의 최측근인 제롬 발케 FIFA 사무총장의 뇌물 전달 사실이 공개되는 등 미국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퇴를 선언했다. 돈의 힘으로 유지됐던 블라터의 왕국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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