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한국스포츠경제 함태수] "감독은 늘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자리죠."
KIA 대졸 신인 오른손 투수 문경찬(23)은 지난 4월22일 특별한 경험을 했다. 당시 홈에서 롯데를 만난 KIA는 5-7로 뒤지던 9회 2사 2루 마지막 기회에서 최희섭의 적시타로 한 점을 쫓아갔다. 김기태 KIA 감독은 발이 느린 최희섭을 대신해 문경찬을 1루 대주자로 썼다. 경기는 6-7로 그대로 끝났지만, 김 감독은 "캠프 때 투수들에게도 주루 플레이를 연습시켰다. 사실 한승혁이 우리 팀에서 가장 빠른데 그날 등판을 했으니, 문경찬밖에 없었다"며 "감독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해외 언론에도 소개된 '3루수 이범호의 포수 뒤 이동' 도 늘 '최악'을 생각하는 김 감독을 아는 야구인이라면 이해 못할 판단도 아니다.
'최악'에 대한 설정은 평소 서두르지 않는 김 감독의 야구관과도 궤를 같이 한다. 김기태 감독은 지난2일 잠실 두산전에 앞서 "2군에서 올라올 투수들이 있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여름이 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며 무리 시키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히 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이 한 말은 "길게 봐야죠"이다. 그는 "우리 팀, 아주 잘하고 있지 않은가, 4월(12승13패)에도 5월(12승13패)에도 -1이다. 5할 승률을 아니지만 한 끗 차이"라며 "선수들에게 딱 한 마디 한다. 길게 보자고"라고 말했다.
KIA는 시즌 전만 해도 하위권 후보였다. 5할 승률 언저리는 고사하고 4할 안팎에서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김주찬, 신종길 등이 모두 빠져 '2군 외야진'이라는 평가에도, 풀타임 경험이 없는 키스톤 콤비를 가동하면서도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 5월24일 경기에서 한승혁이 (5-3에서 이호준에게) 만루 홈런을 맞았을 때 앞서 타자인 나성범(몸에 맞는 공)이나 테임즈(볼넷)에게 맞았다면 2점이나 3점 홈런이다. 그러면 시소 게임이 가능했을 텐데 확 벌어졌다"며 "그런 면에서 부족한 게 보인다. 하지만 지나간 일일 뿐이고, 투수와 타격, 주루와 수비 등 파트별로 조금씩 발전한다는 생각으로 길게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이 같은 주문은 선수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서재응은 2일 두산전에서 662일 만에 승리 투수가 된 뒤 의미 있는 소감을 남겼다. 앞으로 선발이 됐든, 불펜이 됐든 "보직에 상관 없이 오늘과 같은 공만 던지고 싶다"고. 승패를 떠나 KIA 야구는 확실히 달라졌다.
잠실=함태수 기자 hts7@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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