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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여유∙대자연의 평화...다시 찾은 일상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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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의 여유∙대자연의 평화...다시 찾은 일상의 희망

입력
2015.06.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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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그리고 희망, 케이프타운과 희망봉

레코드상 주인 슈테판 시거맨은 대서양을 끼고 도는 절벽 도로를 달리며 ‘미국에선 ZERO, 남아공에선 HERO’로 평가 받는 가수 로드리게스의‘슈가맨’을 흥얼거린다.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은 채프만스 피크(Chapman’s Peak) 드라이브 도로를 케이프타운의 상징으로 앞세웠다. 자동차 광고에서도 한 번쯤은 봤을 듯한, 114 굽이 아슬아슬한 해안 도로다. 케이프타운에서 보면 테이블마운틴 뒤편이다.

여행객들이 테이블마운틴에서 케이프타운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시원하고 아찔하다. 케이프타운=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행객들이 테이블마운틴에서 케이프타운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시원하고 아찔하다. 케이프타운=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테이블마운틴을 오르는 케이블카
테이블마운틴을 오르는 케이블카
희망봉 가는 길에 통과하는 채프만스피크 드라이브 도로
희망봉 가는 길에 통과하는 채프만스피크 드라이브 도로

테이블마운틴은 많은 설명이 필요치 않을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해발 300m 지점에서 1,000m까지 오르는 케이블카로 정상에 오르면 테이블처럼 넓은 평지지형이다. 수직에 가깝게 솟아오른 봉우리이기 때문에 케이프타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편으로는 아프리카 1%가 산다는 캠스베이, 사자를 닮았다는 라이언스 피크(사자봉쯤 되겠다), 그 뒤편으로 바다 한 가운데 고립된 로빈 아일랜드(넬슨 만델라가 18년간 수감됐던 곳이다)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어디를 둘러봐도 탁 트이고 아찔한 전망에 가슴이 뻥 뚫린다. 가히 유럽인들이 탐낼만한 곳이다.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까지는 대략 70km, 이 넓은 반도가 모두 테이블마운틴 국립공원지역이다. 오른편으로 대서양을 끼고 달리던 길은 시몬스타운을 지나면서 왼편으로 인도양과 나란히 이어진다. 해군기지 시몬스타운은 아프리카 펭귄 서식지로 유명하다. 탐방로는 바다에서 막 올라온 펭귄이 해변을 가로질러 풀숲 모래밭에 둥지를 트는 모습까지 볼 수 있게 설치했다.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인간과 펭귄의 공존, 신선한 경험이다.

시몬스타운 아프리카 펭귄 서식지
시몬스타운 아프리카 펭귄 서식지

드디어 최종 목적지 희방봉, 교과서에도 등장해 많은 한국인의 버킷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곳이다. 희망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그곳까지 이르는 길 때문인지 모른다. 요금소를 통과하고도 희망봉까지는 차로 10분 이상 달려야 한다. 키 작은 잡목들이 덮고 있는 평원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너머에 어떤 희망이 있을지 기대가 커질 수 밖에. 봉우리로 번역하지만 공식 지명은 ‘Cape of Good Hope’, 길게 뻗은 산줄기가 바다와 만나는 ‘곶’이 더 정확하다. 실망할 수도 있겠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희망곶’이라는 작은 표지 외에 어떤 것도 없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여행객들이 몰리는 까닭은 비루한 일상에서 조그만 희망의 단서라도 발견하기 위함일 거다.

희방봉 가는 길은 고원 평원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아 기대감을 키운다.
희방봉 가는 길은 고원 평원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아 기대감을 키운다.
희망봉 팻말을 앞에두고 기념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희망봉 팻말을 앞에두고 기념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희망봉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산줄기 꼭대기 케이프포인트다. 왔던 길을 거슬러 또 다른 찻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대가 있는 꼭대기까지 모노레일을 운행한다. 꼭대기에서 내려봐도 대서양과 인도양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눈대중으로 가상의 선을 그어 보지만 일렁이는 파도와 거센 바람에 인위적인 구분은 무참히 부서진다. 마치 부질없는 희망과 쓸데없는 욕심 따위는 모두 던져 버리라는 듯. 그래서 희망봉에서 안고 오는 것은 다시 일상에 대한 희망이다. 남아공에서 영웅으로 살 수도 있지만, 고향 디트로이트의 담담한 일상으로 되돌아온 ‘슈가맨’로드리게스처럼.

●인도양의 태양과 승리의 미소, 더반

인도양이라는 단어에는 은은한 붉은 색감이 감돈다. 더반 엘랑게니(Elangeni, 줄루어로 태양이라는 뜻이다) 호텔에서 본 일출은 노을처럼 발갛다. 바다로 수십 미터 나간 잔교엔 해가 뜨기도 전부터 낚시꾼들이 몰리고, 여명이 밝아올 때쯤이면 해변 산책로는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붐빈다. 서핑을 즐기려는 이들은 앞다투어 파도로 뛰어들고, 곧이어 카누 행렬이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를 가로지른다. 더반 해변은 새벽부터 밤까지 레포츠 천국이다. 경찰이 24시간 순찰하기 때문에 밤 산책도 안전하다.

더반 모제스맙히다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요트를 즐기는 시민들
더반 모제스맙히다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요트를 즐기는 시민들
인도양에 접한 더반 해변은 항상 일정 수준의 파도가 밀려와 서핑의 천국이다.
인도양에 접한 더반 해변은 항상 일정 수준의 파도가 밀려와 서핑의 천국이다.
더반 선상유람은 10km가 넘는 해변을 돌며 바다에서 해안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더반 선상유람은 10km가 넘는 해변을 돌며 바다에서 해안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아쉬운 건 딱 하나, 오후 7시30분 맥주 한잔 마시려고 해변 카페로 나갔는데 이미 문닫을 시간이란다.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끝없이 밀려드는 청량한 파도소리, 이보다 완벽한 조건은 없다. 그런데 맥주 한잔 마실 곳이 없다니. 일행 중 한 사람은 이 상황을 ‘화가 날 지경’이라고 표현했다.

그나마 호텔에서 저렴하게 아쉬움을 달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더반은 조벅이나 케이프타운에 비해 물가가 싼 편이다. 커피도 술도 호텔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비싸지 않다. 엘랑게니 호텔에서 양갈비 요리와 파스타, 맥주 4병을 시켰는데 3만원 정도 나왔으니 맛과 서비스에 비하면 놀라울 만큼 싼 가격이다. 남아공 사람들이 휴가지로 더반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스포츠사에서 더반은 승리의 도시다. 1974년 홍수환이 아놀드 테일러를 꺾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쳤던 곳이 더반이다. 특설 링이 설치됐던 웨스트릿지 테니스 경기장은 지금도 여전하다. 모제스 맙히다 스타디움은 2010년 월드컵 때 한국이 조별예선에서 나이지리아와 비기고 16강행을 결정지은 곳이다. 해변 가까이 있어서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이는 경기장은 중앙 아치로 올라가 그라운드로 번지점프를 하는 명소가 됐다. 2011년 IOC 총회에서 평창올림픽 유치를 확정한 곳도 이곳이다. 2024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리다.

국내 여행사의 남아공 상품에는 대부분 더반이 빠져 있다. 그렇기에 짧은 시간이나마 시청인근 워크숍 거리를 방문한 것은 행운이었다. 관광지가 아닌 남아공의 속살을 조금이나마 엿볼 기회였다. 마침 광장에 수 백명의 시민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애들은 가라”로 시작해 “이 약 한번 먹어봐”로 이어지는 추억의 약장수 공연이 분명했다. 즉석에서 효험을 증명해줄 장애인도 대기 중이었다. 흑인들만 있는 거리, 이제야 검은 대륙이 실감난다. (실제 관광지에서는 흑인이 오히려 소수다) 수많은 노점상도 줄지어 있어 살아 움직이는 아프리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카메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자연의 평화와 자유, 크루거 국립공원

끝없이 푸른 초원을 상상했다. 크루거 국립공원 인근의 호스프릿(Hoedspruit)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실제는 잡목이 우거진 덤불이었다. 초원보다는 풍성하고, 정글에는 못 미친다. 그 덤불 숲 사이로 낸 수십 갈래 도로를 이동하며 야생동물을 추적한다. 그래서 이곳에선 ‘사파리’보다 ‘게임(Game)’이라고 표현한다. 게임을 즐기는 드넓은 숲은‘게임 리저브(game reserve)’고, 숙소는 ‘게임 롯지(Lodge)’다.

크루거 국립공원 인근 호스프릿 공항 주변의 게임리저브. 숲에 난 수많은 도로는 사파리를 위한 길이다.
크루거 국립공원 인근 호스프릿 공항 주변의 게임리저브. 숲에 난 수많은 도로는 사파리를 위한 길이다.
사자도 코앞에서 만나고...
사자도 코앞에서 만나고...
코끼리의 생생한 모습도...
코끼리의 생생한 모습도...
기린의 여유로운 호기심도 즐길 수 있다.
기린의 여유로운 호기심도 즐길 수 있다.

게임은 하루 2차례 3시간씩 진행된다. 동물의 이동이 활발한 새벽과 해질 무렵이다. 발자국이나 배설물로 야생동물을 추적하는 2인 1조 게임 레인저의 안내로 오픈카에 올라 숲으로 떠난다. 미리 사냥한 기린에 매달린 사자 가족, 인기척에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로 이동하는 코끼리 가족, 호기심 가득 기린 가족, 덩치에 비해 조심성 많은 코뿔소 가족 등 덩치 큰 야생동물을 만날 때마다 긴장과 전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임팔라와 누 멧돼지 등 보기 힘든 야생동물이 이곳에선 오히려 흔하다. 동물원의 갑갑함이 없어 보는 사람도 편하고 자유롭다. 호숫가에서 노을 속 맥주 파티, 여명 무렵 커피 브레이크도 낭만적이다.

한낮은 기온에 비해 햇살이 따갑다. 사람도 동물도 쉬는 시간이다. 일행이 묵었던 카파마리버 롯지는 특급호텔 시설이지만 TV도 라디오도 없다. 완전한 고요 속에 새소리와 들짐승 울음만이 정적을 가른다. 낯설지만 익숙해지는 것도 금방이다. 하룻밤을 보내고 떠날 시간이 되자 벌써 이 평화와 자유가 그립고 아쉽다.

더반/케이프타운/호스프릿(남아공)=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여행메모]

●한국에서 남아공까지 직항은 없다. 남아프리카항공(SAA)이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까지 매일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약 13시간. ●남아공의 겨울은 하루에 4계절이 있다고 할 정도로 기온 차이가 심하다. 겨울에 접어드는 요즘은(한국과 계절이 반대다) 영상 10도~30도를 오르내린다. 방한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바람막이 점퍼는 필수다. 지역 편차도 크다. 더반은 고온 다습한 한여름(1~2)월을 피하면 연중 쾌적하다. 케이프타운은 겨울이 우기다.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 테이블마운틴 케이블카도 운행하지 못하는 날이 많다. ●여행사의 남아공 상품은 대부분 케이프타운을 기본으로 하고 사파리는 인접 국가에서 하는 일정이다. 뚜르 디 메디치 여행사(02-545-8580)가 케이프타운과 크루거 국립공원 사파리가 포함된 4박7일 상품을 549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더반에 거주하며 인다바 한국통역원으로 활약한 이광전(+27-79-4609107), 이진명(+27-83-2556532)씨에게 요청하면 더반 시내와 인근지역 여행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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