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일 낮 12시52분 중국 여객선 둥팡즈싱(東方之星)호 선체 안에서 잠수부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된 65세 할머니는 공포감이 가시지 않은 듯 울먹이면서도 구조대원들을 향해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넸다. 1일 밤9시28분 배가 가라앉으면서 객실에 갇힌 뒤 15시간 30분 만에 물 밖으로 나온 할머니는 반쯤 넋이 나간 채 아직도 자신이 살아 돌아온 게 믿겨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관영 CCTV는 할머니의 생환 소식을 전하며 할머니처럼 선체 안의 생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구조 당국은 선체를 망치로 두드리며 반응하는 소리를 통해서 생존자 위치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수면 위로 떠 오른 선박 밑바닥 일부를 용접기로 절단하는 작업도 벌였다. 일부 매체들은 선체 안의 생존자와 전화 통화가 연결됐다는 주장을 전하기도 했다.
1일 밤 9시28분 후베이(湖北)성 젠리(監利)현을 지나 창장(長江ㆍ양쯔강)을 거슬러 오르던 둥팡즈싱호가 갑자기 뒤집혀 침몰하기까진 단 몇 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선원들은 “갑자기 불어온 회오리바람(토네이도)에 배가 오른쪽으로 기운 뒤 2분만에 가라 앉았다”고 밝혔다. 당시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을 출발, 충칭(重慶)으로 향하던 둥팡즈싱호엔 승객 406명과 선원 47명, 여행사 직원 5명 등 모두 458명이 타고 있었다. 더구나 승객 대부분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었다. 이들은 상하이(上海)의 한 여행사가 노인들을 대상으로 기획한 단체 여행 ‘석양홍’(夕陽紅)에 참여한 터였다. 난징에서 배를 탄 뒤 충칭까지 창장을 거슬러 오르며 관광을 하는 여행 상품이다. 그러나 ‘호화 유람선 여행’은 악몽으로 변했다. 50~80세의 노인들이 갑자기 가라 앉는 배에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승객들중에는 3세 아이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 했다.
중국 중앙기상청과 날씨 정보 사이트인 중국천기망(中國天氣網)에 따르면 당시 사고 현장의 회오리 바람은 풍력이 12급이나 됐다. 풍력 12급은 초속 32.6m, 시속 117㎞ 이상이다. 시간당 70㎜에 가까운 폭우도 내렸다. 사고가 난 곳은 강폭이 좁고 수심이 낮은데다 여름이면 간혹 토네이도성 강풍이 발생했다고 주민들이 전했다. 일각에선 싼샤(三峽)댐이 완공되고 저수가 시작된 후 회오리 바람이 잦아졌다면서 일종의 환경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2일 오후2시 현재 생존자 13명 중엔 선장과 기관장도 포함됐다. 이들은 사고가 나자 배에서 탈출, 스스로 수영을 해 뭍에 도착했다. 당국에 사고 신고를 하고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은 그 이후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실질적 구조는 2일 새벽에나 시작됐다. 선장이 구조 임무를 다 하지 않아 구조의 황금시간대를 놓친 것 아니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지켜 본 중국 당국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보도가 나온 뒤 불과 4시간만에 인명 구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특별 지시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곧 바로 비행기를 타고 이날 낮 현장에 도착, 구조작업을 진두 지휘했다.
그러나 의문점도 많다. 사고가 1일 밤9시28분에 났는데도 관영 신화통신의 첫 보도는 2일 새벽4시24분에나 나왔다. 회오리 바람만으로 침몰했다는 데 대해서도 의심하는 시각이 적잖다.
승객 가족들 일부는 사고 현장을 찾아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하지만 사고현장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대부분의 가족은 인터넷을 통해 생환소식을 애타게 찾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할머니 소식을 애타게 찾고 있는 천(陳)모 씨는 인터넷에 할머니의 사진과 정보를 올려놓고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녀의 할머니는 올해 80세로 지난달 28일 친구 두 명과 함께 난징(南京)에서 승선했으며, 사고 당일 밤 7시께 통화했을 당시 막 적벽(赤壁)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즐겁게 대화했다고 전해 듣는 이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여행사 앞에서 오열하는 승선자 가족들을 찍은 사진이 돌기도 했으며, 중국판 트위터 시나웨이보에는 “한국에서 여객선이 침몰할 때는 24시간 텔레비전에서 중계했다”며 중국 언론의 소극적 보도를 비판하는 글이 게시됐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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