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 전 남북정상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6ㆍ15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두 손을 맞잡아 올리던 장면은 감격적이었다. 그 직후 주요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ㆍ15공동선언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93~98%에 이르렀다.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은 분단 55년 만의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에 환호하는 데 진보와 보수, 정파가 따로 없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한 지지는 70% 안팎에 이르렀다. 일찍이 국민들이 남북 관련 사안에 이처럼 하나가 된 예가 없었다.
▦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보수진영이 6ㆍ15공동선언 제2항을 문제 삼으면서 논란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의 공통점을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한다는 내용에 대해 보수진영은 대한민국 헌법에 위반된다며 6ㆍ15공동선언의 폐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남북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통일 전까지 남북 평화공존과 협력을 위한 틀일 뿐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의 합의도 못한다면 평화통일은 불가능하다.
▦ 6ㆍ15공동선언의 핵심은 7년 뒤 2차 남북정상회담의 10ㆍ4공동선언과 마찬가지로 상호 체제 인정을 전제로 한 평화공존과 협력이다.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이를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아 북측의 반발을 사왔다. 지난 7년여 동안 남북관계의 경색이 풀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드라이브에 힘 입어 어느 때보다 통일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평화공존과 협력을 통한 통일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막막해지는 것은 아이러니다.
▦ 남북 민간단체가 추진해온 6ㆍ15공동선언 15주년 기념 공동행사가 사실상 무산됐다. 최근 브레이크 없는 남북간 대결과 반목에 비춰 예정된 일이다. 6ㆍ15 공동행사와 연계돼 추진되던 광복 70주년 공동행사 성사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6ㆍ15 기념행사의 성격, 광복 70주년 공동행사 개최 장소 등을 둘러싼 남북간 타산의 충돌이 직접 원인이다. 하지만 상호체제 인정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의지 부족이 바탕에 깔려 있다. 6ㆍ15 공동선언의 좌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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