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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어든] 박지성, 세계 축구정치에 눈을 돌려라

입력
2015.06.0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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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나는 루이스 피구(사진)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피구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피구가 나를 만나서 기분이 나빠졌던 것은 아니고, FIFA 회장 문제와 관련한 일들 때문에 마음이 상해있었다. AFC가 바레인에서 열린 AFC 총회에서 피구에게 공개적인 발언권을 주지 않았던 까닭이다. 오직 블래터 회장만이 발언권을 얻을 수 있었고 피구에게는 그 어떤 기회도 돌아가지 않았다.

피구는 FIFA 회장에 도전할 만큼 축구 정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FIFA라는 곳이 축구 자체보다는 엄청난 정치 싸움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FIFA의 생리를 이해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비록 피구가 FIFA의 정치 세계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양심과 마음만큼은 올바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FIFA 정치의 역사, 보이지 않는 적과 동맹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오랜 경험이 필요한 과정이다. 우선은 지역 축구 연맹에서 활동하며 시스템이 돌아가는 일을 익혀야 한다. 지역적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무대로 지식을 넓히는 것이 순서다.

FIFA의 현실이 결코 밝은 것은 아니지만 필요 이상으로 FIFA를 진흙탕처럼 묘사하려는 시도도 있다. 서구 언론 특히 영국 미디어가 현재의 FIFA 사태를 보도하며 너무 일방적이고 치우친 관점을 보이는 듯하다.

몇몇 지역에서는 실제로 블래터를 좋아하고 지지하기도 한다. 반드시 돈 때문은 아니고 다른 이유들도 있다. FIFA가 영국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는 아주 손쉽게 알아챌 수 있다. FIFA 기자 회견에 가면 질문의 90%는 영국 언론으로부터 나온다. FIFA 입장에서는 영국이 그들을 가장 괴롭히는 상대다.

지난주 FIFA 임원들에 대한 체포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블래터 회장은 '이 모든 사태가 영국 언론의 복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8 월드컵을 놓친 영국이 이에 대해 보복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 언론이 월드컵 개최 실패에 실망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고, 그 과정에 불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국 기자들이 FIFA 관리들의 뇌물 수수를 부추기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다)

한편 아시아 기자들은 언제나 조용할 뿐이다. FIFA 회의나 기자 회견에서도 아시아 기자들은 침묵을 지킨다. 세계 축구 정치가 돌아가는 모습에 딱히 흥미가 없는 듯하다. 아시아 축구가 세계적인 축구 거물들의 무대에 좀 더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 축구 전체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 세계로 나갈 힘을 가진 인물이 있어야 한다.

지난 2011년 박지성(왼쪽)-이영표의 마지막 한일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1년 박지성(왼쪽)-이영표의 마지막 한일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축구 정치 무대에서 더 많은 축구인들이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축구 선수들이 행정가나 관리가 될 만큼 똑똑하지 못하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사실은 축구 선수 출신은 좀 더 순수하게 축구를 사랑한다는 점이다. 축구 관리들도 축구에 대한 진심을 갖고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그러한 경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축구 정치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겠지만, 누구나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열정, 헌신, 통일성을 갖고 변화를 만들어낼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축구계 모든 사람들과 힘을 합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현재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물은 박지성이 아닐까? 우선 박지성은 아시아 그 어떤 선수보다 높은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축구 선수로 은퇴했고 아빠가 될 예정이지만, 아시아 축구계를 위해 국제 축구판으로 복귀하는 일만큼 멋진 결정이 또 있을까? 현재의 FIFA 관리들은 축구계의 돈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썩은 인물들이 많다. 박지성처럼 성실하고 깨끗한 사람이 세계 축구계로 가면 그러한 일을 뿌리 뽑는 노력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이러한 일이 현실이 되면 2002 월드컵 4강이나 챔피언스리그 우승보다 더 가치 있는 업적으로 기억될 수 있다.

박지성은 어차피 축구 지도자가 될 뜻이 없는 것 같기에 축구 정치에 뛰어들 여유가 있다. 축구 정치인 역시 풀타임 직업은 아니고, 회의나 행사가 있을 때 집중적인 활동을 할 뿐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네트워크 관리를 하는 게 전부다. 따라서 이 일을 하며 재단과 자선 사업, 학업 등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세상 모두가 박지성이라는 사람의 성격과 인품에 대해 알고 있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며 축구 팬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뛸 마음이 있다. 머리도 영리하기에 금방 축구 정치계의 생리를 파악해 그 무대에 적응할 역량이 있다. 정치라는 게 늘 복잡하기는 하지만 머리가 있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요소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박지성이 아시아 축구 정치에 뛰어들면 다른 전직 선수들에게 자극제 역할도 할 수 있다. 이영표 역시 축구 정치에 뛰어들 자질이 있는 확실한 후보다.

은퇴 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지성. 축구 지도자의 꿈을 키우고 있지 않다면 세계의 축구정치에 당당히 발을 들여놔야 할 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은퇴 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지성. 축구 지도자의 꿈을 키우고 있지 않다면 세계의 축구정치에 당당히 발을 들여놔야 할 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랍 왕족이나 기업 CEO가 아닌 선수 출신의 축구 정치가가 아시아에 나오면 매우 신선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듯하다. 언론과 팬이 축구 정치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언론과 팬도 축구판이 수면 아래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더욱 자세하게 알 필요가 있다. 축구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질 때 축구 정치인들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를 확률도 내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자신이 그러한 골치 아픈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가 클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아시아 축구를 위해 박지성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공헌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축구장에서의 영웅도 필요로 하지만 축구계를 이끌어줄 또 다른 리더 역시 원한다. 피구는 너무 많은 것을 짧은 시간에 해내려다가 실패했다. 다양한 자질을 가진 레전드들이 피구의 예를 보고 교훈을 얻어 축구를 진심으로 위하는 정치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축구 선수 출신이 정치계로 진출해 꼭 승리하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이들의 시도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박지성은 10년 전에도 스타였고 지금도 그 에너지를 갖고 있다. 아시아가 배출한 가장 세계적인 선수로서 그 누구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아시아 축구 정치계는 이러한 인물을 꼭 필요로 한다.

축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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