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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시간이 약이다

입력
2015.06.0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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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주말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아 집에서 언짢은 채로 지냈다고 한다. 친구는 직장에서 후배와 겪은 속상한 일 때문에 화가 많이 났었다. 무시당한 것 같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는데 주말을 지나고 보니 마음도 정리가 되고 후배 마음도 이해가 된다고 하면서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약이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요즘은 정말 와 닿는다. 시간이 흐르면 속상하고 괴로운 일도, 상처 받은 아픔도 잊혀지고 무뎌진다. 아픔도 시간이 흘러 덜할 수 있다는 말인데 요즘은 더욱 맞는 것도 같다. 당장은 견딜 수 없어도 버텨야 될 때가 있다. 노력해도 바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저 사람들이 나에게 왜 그런지, 내 마음은 또 왜 이런지 알기도 어렵고 이해하기가 힘들 때가 많다. 그런 경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흘러야 상황이, 마음이 “정리가 된다.”

시간이 흘러 퇴색하고 각색되는 것도 있고 그런 일이 있었나 망각해버리는 것도 있다. 마음의 고통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간혹 해주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내기에는 너무 무성의한 듯 느껴질 때가 많았다. 괴로움에 대한 해답을 의논하고 방법을 찾고 싶어서 병원에 오는 것이니까.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쓰러지지 않도록, 스스로 힘을 키울 때까지 아이를 잡아주는 것이 나의 역할인 경우도 많았다.

스스로를 “유리 멘탈”이라고 하고 고민이 많은 아이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무언가를 해도 항상 후회가 되고 자려고 누우면 그날 했던 행동, 말들이 떠오르고 다른 사람들의 말들이 떠올라 울고 지치고, 악몽을 꾸었다. 대범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방이 싫은 내색을 해도 흔쾌히 견뎌나가면 좋은데 부서질 듯이 연약한 유리 같은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찾아온 아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기대를 많이 받던 아이는 무엇이든지 잘 하는 아이였다. 항상 칭찬과 사랑만 받아왔는데 사실 좌절이라는 것을 몰랐다. 좋은 말만 듣고 허용을 다 받아온 아이는 예의 바르고 착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안 돼”라는 말과 “싫어”라는 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분노하다가 이내 주눅 들면서 모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착한 아이의 모습대로 인정받고 싶어, 모든 일에 고민이 늘기 시작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소용이 없었다.

다른 사람 생각을 알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너를 싫어한다는 근거가 맞을까? 정말 그렇다고 해서 그 다음에는? 생각을 바꾸기 위한 연습에도 아이의 괴로움은 줄지 않았다.

긍정심리학에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의 근력이라고도 표현되는데 시련과 실패에도 이겨내는 힘을 말한다. 살면서 회복탄력성을 키우려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아야 하고,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을 견뎌나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이런 경험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어려움과 시련을 견디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창하게는 아니지만 서서히 힘을 키우고 시간이 약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들이 있다.

전문가들은 작은 친절을 베풀기, 사소한 것에 감사하기를 권한다.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기, 환하게 인사하기, 작은 배려하기, 맑은 날씨에 감사하기 등 작고 사소한 것들을 반복하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강점을 찾으라고 한다. 넘치는 걱정으로 괴로운 아이는 생각을 멈추고 시간이 흘러가게 두는 것을 연습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간이 약이 되려면, 그 사이 마음의 회복탄력성이 커져 나갈 수 있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그리고 연습이 필요하다.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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