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FㆍIMD 분야별 평가, 인터넷 광대역 속도 48위
이동전화 가입자 수 44위… 세계적 IT강국 무색하게
주관적 잣대 회의론 솔솔, 항목끼리 서로 모순되기까지
작년 9월 금융권은 난데 없는 ‘우간다 파문’에 홍역을 치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의 금융시장 성숙도(80위)가 아프리카의 빈국 말라위(79위)와 우간다(81위) 수준이라는 비판 때문이었다. 일부 언론은 물론 국회의원까지 나서 금융권을 질타했지만, WEF의 조사 항목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유지 중인 국내 은행들의 건전성 순위가 122위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사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해마다 국제 경영평가 기관들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가 국내에서 비중 있게 수용되고 있지만 이들의 평가 잣대에 대한 회의론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순위가 매년 반복되고, 객관적 통계보다 주관적 설문에 의해 순위가 좌지우지되는 경향도 많다. 전문가들은 “보다 현명한 수용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1일 정부와 국제 경영평가 기관들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국가경쟁력 관련 지표를 조사ㆍ발표하는 기관은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ㆍ매년 5월 발표), 세계경제포럼(WEFㆍ매년 9월), 세계은행(WBㆍ매년 10월) 등 3곳 정도다. 이 가운데 WB는 주로 중소기업 경영환경에 초점을 맞춘 반면, WEF와 IMD는 전반적인 국가경쟁력을 종합 평가한다.
작년과 올해 WEF, IMD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각각 144개국과 61개국 중 25~26위 수준. 하지만 114개(WEF)와 342개(IMD)에 달하는 분야별 평가 결과 가운데는 ‘미심쩍은’ 것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IT 인프라 관련 항목들이다. IMD는 올해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가입자 수를 61개국 중 44위로 발표했다. 또 인터넷 광대역 속도는 48위에 그쳐 ‘세계적인 IT 강국’이란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각국의 유심(USIM) 칩 판매 개수가 기준인데, 단말기 위주로 이동전화에 가입하는 우리와 달리 외국에선 1인당 여러 개를 쓴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광대역 속도도 “외국 사이트 접속시 속도를 재는데, 우리는 국내 콘텐츠가 많아 상대적으로 외국 접속이 덜 한 탓에 손해를 봤다”고 덧붙였다.
WEF의 금융시장 성숙도 역시 세부항목에서 은행건전성(122위), 대출의 용이성(120위), 금융서비스 이용가능성(100위) 등 거의 모든 항목이 최하위권에 머물렀지만 우리 금융 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 밖에 HIV(후천성면역결핍증) 발병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지만(1위), HIV가 기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80위에 그치는 등 조사 결과 사이에 모순되는 항목들이 있는가 하면, 두 기관의 평가가 상반된(WEF 평가 중 인플레이션 1위, IMD 평가 중 생계비물가 56위) 경우도 발견된다.
전문가들은 이들 기관의 평가에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두 기관 모두 통계보다는 설문 항목에서 우리의 경쟁력 순위가 유독 낮은 경향을 보이는데, 특히 WEF의 경우 설문 항목(80개)이 전체(114개)의 70%에 이른다. 120위에 머문 시장독점 정도나 104위를 기록한 무역장벽 정도는 실제 국제적인 수준이라기보다 설문에 응한 국내 기업인들의 체감도에 더 많이 좌우됐을 거란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국제 평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작 선진국에선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국가경쟁력 순위에 너무 민감해진 경향이 있다”며 “참고는 하되 일희일비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윤석헌 숭실대 교수는 “순위의 객관성과 별개로, 설문에 드러난 수요자의 지적은 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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