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서 도로교통법 개정 촉구
지난달 31일 오후 2시 서울 성산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오토바이 운전경력 20년차 강모(47)씨가 애마 ‘할리데이비슨 883’에 시동을 걸었다. 육중한 굉음을 내며 출발한 강씨의 오토바이는 상암사거리를 지나 강변북로를 질주했다. 이날 강변북로 등 서울 주요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린 사람은 강씨만이 아니었다. 서울에서만 오토바이 500여대가 내부순환로와 올림픽대로 등을 점령했고, 지방에서도 1,000여대가 주요 도로 곳곳에서 질주를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의 주행은 엄연한 불법이다. 해당 도로는 자동차 전용이어서 오토바이의 접근이 불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강씨가 굳이 불법을 감수하고 강변북로를 택한 것은 오토바이 운전자들에게 ‘육일절’로 불리는 상징적인 행사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1972년 6월 1일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통행을 금지하는 고시를 공표했다. 이에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매년 6월 1일을 맞아 통행 금지에 저항하는 퍼포먼스를 벌여 왔다. 올해는 6월 1일이 월요일이라 직전 주말에 주로 행사가 열렸다. 경찰의 단속이 없어 목적지까지 완주한 강씨는 “제한속도 준수 등 교통법규만 잘 지키면 오토바이도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안전상 문제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흔히 오토바이 하면 도로를 무법 질주하는 폭주족을 떠올리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교통법규를 준수하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평범한 오토바이 운전자들도 많다. 육일절 퍼포먼스는 이런 오토바이 애호가들이 중심이 되어 2년 전 처음 기획한 행사다. 오토바이 인터넷 동호회 ‘히어로즈 클럽’과 ‘할리데이비슨 카페’ 회원 100여명은 2013년 서울 광화문광장~시청 구간 2~3㎞를 준법운행하며 처음 육일절을 알렸다. 지난해에는 두 배 가까운 200여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1,500여명으로 추산되는 등 참가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이들은 주행 도중 경찰에 적발되면 단속에 적극 협조하되, 벌금 납부(30만원 미만) 대신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인 여론전을 전개하자는 전략을 세웠다.
올해 3회째인 육일절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동차 외 차마의 운전자나 보행자는 고속도로 등을 통행ㆍ횡단해서는 안 된다’는 현행 도로교통법 제63조를 개정하는 것. 오토바이도 자동차와 똑같은 대우를 받을 권리가 충분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응삼(53) 히어로즈 클럽 회장은 “오토바이도 소형면허를 취득한 뒤 보험에 가입하고 세금도 내는 등 자동차 운전자와 똑같은 의무를 부담하고 있지만, 정작 통행권을 누리는 데 있어서는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를 봐도 오토바이가 고속도로를 다니지 못하는 곳은 극소수 국가에 불과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전무하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다른 관계자는 “신속한 이동이 목적인 오토바이가 자동차 전용도로를 통행할 수 있게 되면 복잡한 일반도로에서 운전하다 발생하는 사고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도로 안전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논리도 폈다.
그러나 도로통행의 관리ㆍ감독을 담당하는 경찰은 법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당장의 변화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오토바이 사고는 중상이나 사망 가능성이 커 당장 자동차 전용도로 통행을 허용하긴 어렵다”며 “자동차 운전자의 90% 이상이 오토바이 폭주족의 무질서한 행태로 인해 거부 정서가 큰 만큼 교통문화 질서가 먼저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토바이의 통행권 침해 논란은 2007년 헌법재판소에서 한차례 법적 쟁점이 됐었다. 전국이륜문화개선운동본부 회원 4명은 “도로교통법 제63조가 행동의 자유를 제약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으나 헌재는 사고 위험성 등을 근거로 도로교통법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다만 일부 재판관은 “잘못된 운전습관이 개선될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단계적 통행 허가가 바람직하다”는 보충의견을 제시하기는 했다. 이에 따라 오토바이 동호인들은 올해 연구용역을 발주해 보다 정교한 ‘허용 논리’를 마련한 뒤 내년쯤 공청회 등 본격적인 법 개정 운동에 나설 계획이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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