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인천 SK-넥센전. 넥센이 3-1로 앞선 7회초에 2사 1ㆍ3루의 기회를 잡자 최만호 작전 코치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염경엽 감독으로부터 사인을 전달 받은 최 코치는 오른손으로 팔뚝-가슴-손등-헬멧을 차례로 만진 뒤 손뼉을 두 번 쳤다. 미국의 야구 역사가 폴 딕슨이 쓴 ‘야구의 감춰진 언어’에 따르면 1경기에서 양 팀이 주고 받는 사인은 무려 1,000개가 넘는다. 광활한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야구에서 사인은 절대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그라운드의 연금술사 작전코치
작전코치는 감독의 사인을 선수들에게 전달한다. 여러 코치들 중에서 순발력과 눈썰미가 가장 뛰어나야 하는 이유다. 작전코치는 선수들과 약속을 통해 키(Key)를 정한다. 가령 모자를 키로 하고 왼손으로 세 번째 터치하는 부분이 ‘진짜 사인’이라고 약속을 하는 것이다. 손등=번트, 팔뚝=치고 달리기, 어깨=도루라면 작전코치가 왼손으로 모자를 만진 뒤 어깨, 손등, 팔뚝을 터치했을 경우 치고 달리기 사인이다. 하지만 사인을 내는 과정에서 왼손이 다시 키로 가면 이전 사인은 모두 취소된다. 앞에서 언급한 행위가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이뤄졌다면 ‘위장 사인’이다.
작전 사인은 보통 한번 정해 놓으면 잘 바꾸지 않는다. 타자는 기본적으로 번트, 스틸, 히트 앤드 런 3가지 상황과 각각의 경우 강공 전환 사인까지 숙지해야 한다. 부득이하게 사인을 바꿔야 할 경우도 있다. 최만호 코치는 “우리 팀 선수가 트레이드 됐을 때, 사인을 간파 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 바꾼다”고 말했다.
작전코치는 수 백 가지에 이르는 상황 별 주자들의 ‘행동 강령’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라운드 밖에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쉽지 않다. 판단력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일부 팀 감독들은 작전코치에게 ‘금주령’을 내리기도 한다. 최만호 코치는 “잘 하면 본전일 뿐이지만 작전코치는 경기에 참여하는 유일한 코치다. 자부심을 갖고 해볼 만한 자리”라고 말했다.
사인은 투수도 낸다
오른손 투수가 허리를 구부린 채 검지와 중지를 왼 어깨에 갖다 댄다. 포수가 내는 사인 중에 두 번째 공을 던지겠다는 의미다. 그러면 포수는 가랑이 사이로 손가락 2개(커브), 4개(체인지업), 3개(슬라이더)를 차례로 펼친다. 투수는 약속대로 체인지업을 던진다. 투수가 먼저 포수에게 사인을 낼 때는 주자가 등 뒤에 있을 때다. 포수가 먼저 사인을 내면 2루 주자가 사인을 훔쳐서 타자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상대 투수의 제구력이 흔들릴 때는 웨이팅 사인이 있으며 때로는 스리볼 노스트라이크에서도 ‘쳐도 좋다’는 히팅 사인을 낸다. 수비 때는 시프트 사인을 벤치에서 전달한다. 수비수들끼리, 주자들끼리 주고 받는 사인도 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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