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정보ㆍ수사기관이 휴대전화 감청을 가능하게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이동통신사에 휴대전화 감청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통신사가 이를 거부하면 1년에 매출액 3%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그러나 각 통신사에 감청장비가 설치되면 합법을 가장한 불법 도ㆍ감청이 광범위하게 자행될 우려가 크다.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인 통신비밀 침해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현행법에서도 법원의 영장을 받으면 휴대전화 등 모든 통신의 감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휴대전화 감청은 할 수 없게 돼있다. 2005년 국가정보원 불법도청 사건으로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던 휴대전화 감청장비가 전면 폐기됐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은 휴대전화 보유대수가 5,000만대를 넘고, 전체 통화 중 80% 이상이 휴대전화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국가안보와 강력범죄 대처를 위해서는 휴대전화 감청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설령 그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하더라도 불법 도ㆍ감청을 원천 차단할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감청장비 설치는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할 소지가 크다.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수집과 전방위 사찰 등의 우려를 불식할만한 대책도 없이 휴대전화 감청을 하겠다고 나서면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국정원은 과거 불법도청 사건뿐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심지어 간첩사건의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그런 행태를 감안하면 휴대전화 감청 강화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사이버 망명’사태에서 보듯 수사기관의 불법 도ㆍ감청과 사찰은 여전하다. 검경의 메신저와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에 대한 사이버 검열이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개정안은 지난 17, 18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폐기됐던 법안과 유사하다. 당시에도 기본권과 사생활 침해 논란이 거세게 일어 무산됐다. 국정원 등 정보ㆍ수사기관에 대한 의혹과 불신이 뿌리깊기 때문이다. 사정은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감청장비 설치로 상시적인 휴대폰 감청이 가능해질 경우 그 파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법원의 감청영장 심사는 구속영장에 비해 덜 까다로운데다 감청기간은 수개월씩 이어진다. 더구나 특정인 사찰을 목적으로 끼워 넣기를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지금은 감청수사 강화를 논하기 보다는 국정원과 검찰의 제자리 찾기가 더 시급하다. 표현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국정원은 감청장비 설치를 요구하기에 앞서 국민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새누리당의 통비법 개정안은 철회가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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