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상원, 일요일 이례적 회의 소집, 반 테러 조항 연장 시도 끝내 실패
매코널 원내대표-대선주자 폴 의원, 켄터키 동향에 평소 정치적 도움
폴 의원이 이번엔 법안 처리 반대, 필리버스터 행사 등 첨예하게 대립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던 켄터키, 같은 고향 출신 정치인들의 예상치 못한 노선 다툼으로 미국 정보 당국이 대 테러정보 수집 능력에 공백기간을 갖게 됐다.
미국 상원은 31일 매우 이례적으로 일요일 오후에도 의회를 소집했다. 이날 밤 시한이 만료되는 국가안보국(NSA)의 통신기록 수집 근거인 애국법(Patriot Act) 대체 법안의 반 테러 조항 연장을 시도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이에 따라 2일로 예정된 후속 입법이 완료되기 전까지 적어도 이틀간 2001년 9·11 테러 직후 애국법이 제정된 지 14년 만에 처음으로 미 국가안보국(NSA)의 통신기록 대량 수집 활동이 중단된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공화당, 그것도 고향이 같은 촉망 받는 대선 주자와 공화당 원내 사령탑의 대립에서 시작됐다.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 같은 켄터키 주 출신의 또 다른 상원의원이자 대선 출마를 선언한 랜드 폴 의원이 ‘반 테러 조항 연장’을 봉쇄하는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중단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법안 처리 실패로 정보기관의 통신기록 접근이 일시적으로 차단된 것보다 매코널 원내대표와 폴 의원의 대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화당 주류를 대표하는 매코널 원내대표와 티파티의 지지를 받는 폴 의원은 정치 성향이 다르지만, 평소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저녁 매코널 원내대표가 상원 본회의장에서 폴 의원을 노려보며 필리버스터 중단을 요구한 장면을 자세하게 전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매코널 의원이 6선에 도전했을 때 폴 의원이 헌신적으로 선거 운동을 도왔고, 폴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매코널 원내대표가 보답이라도 하듯이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인연을 감안하면 극적인 상황 반전이라는 것이다.
폴 의원은 지난달 20일 상원에서 애국법 처리 논의가 시작되자 그날 하루 동안만 11시간 가까이 필리버스터를 행사했으며, 이후 논의에서도 해당 법안 처리를 줄곧 반대했다. 미국 상원에서는 1975년부터 전체 의사일정이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가 제기된 사안을 다른 법안과 연계하지 않는 이른바 ‘투 트랙’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폴 의원은 “테러와 싸우려고 우리 자신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NSA의 불법 감시 행위를 끝내겠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애국법 저지로 인지도는 오를 수 있으나, 골수 공화당 지지자의 시선은 매우 싸늘하다”고 평가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막판 양보를 기대하며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무력화하는 토론종결 표결을 자제했으나, 폴 의원이 끝내 거부하자 이날 표결에 붙여 71대17로 가결시켰다. 이에 따라 미 상원은 폴 의원의 동의와 관계없이 2일 전체 회의를 열어 관련 사항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폴 의원의 반란으로 시간에 쫓기게 된 상원은 하원에서 애국법 개정안으로 채택한 ‘미국자유법안’을 사실상 원안 그대로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 하원은 지난달 정보기관이 직접 통신기록을 보관하는 대신, 평소에는 통신회사가 정보를 보유하고 필요할 때에만 당국이 기록을 요청하도록 관련 규정을 바꿨다. 당초 매코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상원 지도부는 하원에서 공화ㆍ민주당이 합의한 ‘미국자유법안’이 테러위협을 간과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애국법 조항을 사실상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워싱턴=조철환 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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