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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구름 위에 뜬 시간

입력
2015.06.0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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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행 여객기 좌석 모니터.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볼 수 있는 메뉴들이 깔려 있다. 영화 한편을 고른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잠깐 보다가 곧 꺼버린다. 작은 화면으로 요란한 영상을 보고 있자니 외려 갑갑해진 탓이다. 때마침 난기류를 만나 요동치는 기체. 오디오 메뉴에서 베토벤 교향곡을 하나 고른다. 불안해진 마음이 약간 가라앉는다. 그래도 갑갑증은 여전하다. 다시 메뉴를 뒤진다. 운항경로 메뉴. 비행 중인 전방, 후방, 하방으로 골라 살필 수 있다. 전방을 보니 구름 속이다. 후방엔 이동 중인 기체가 떠 있다. 하방엔 구름이 촘촘하게 깔려있다. 드디어 채널 고정. 수십 분째 화면에 변화가 없다. 그런데, 그게 보다 꺼버린 영화보다 훨씬 다이내믹하다. 괜히 마음이 설렌다. 구름 위에서 구름을 내려다보는 경험이 어디 일상에서 자주 있을 수 있으랴. 눈을 나른하게 반쯤 뜨고 구름의 결들을 살핀다. 고도 삼만 팔천 피트. 인간의 관점에선 거대하나 하늘의 관점에선 좁쌀만 할 이동기계 안에서 문득 삶과 죽음의 길고도 짧은 시간을 생각한다. 하늘을 나는 사람의 속도감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원근감을 따져본다. 속에서 울컥, 쓰되 푸근한 기별이 올라온다. 구름의 한 입자로나 투명하게 사라질 삶의 어느 순간들이 역설적으로 각별해진 까닭인 거다. 이만한 서사가 또 있을까. 구름의 전령이라도 된 기분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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