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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노조탄압의 망령이 아직도 떠도는 나라

입력
2015.05.3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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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현직 교원만 교원노조에 가입하도록 한 교원노조법 제2조가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헌재 결정은 존중해야 하겠지만 담당변호사 중 한 명으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이번 헌재 결정을 5가지 주제로 정리해 보았다.

헌재는 교원노조는 현직 교원만 가입해야지 해직 교원이나 구직 중인 교원, 계약기간이 만료된 기간제교원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면 교원노조의 자주성이 훼손된다고 한다.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지키려면 이들은 절대 전교조에 가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나친 관심이고, 부당한 개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 조합원 자격이 있는지, 어떻게 조합을 운영할지는 전교조의 주인인 조합원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제3자인 국가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해직 교원 9명을 전교조에서 쫓아내라고 요구했을 때, 전교조 6만여 조합원들은 68.59%라는 압도적 의견으로 이들이 조합원이라고 했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이란 노동조합의 주체인 조합원들이 스스로 조합가입 범위와 활동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조합비도 내지 않고, 조합 사무실이 어딘지도 모르고, 조합원 총회에 가본 적도 없는 제3자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제3자인 국가가 조합원 자격을 판단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오히려 자주성을 훼손한다는 말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자주성을 ‘스스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풀이한다. 이 말뜻을 바꾸지 않는 한 이번 헌재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헌재는 또 해직 교원, 계약기간이 만료된 기간제교원은 교원노조 대신 다른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거기에 가입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특정 학교에 재직 중인 교원은 아니지만 엄연히 교원 자격증을 가지고 교육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이 종사하는 교육분야의 노동조합, 즉 교원노조이지 자신의 업무와 상관없는 금속노조, 언론노조는 가입할 수도, 가입할 이유도 없다.

기간제교원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번 헌재 결정에 의하면 기간제교원은 1학기 계약기간 중에는 교원노조에 가입했다가 계약이 만료된 여름방학에는 탈퇴해야 한다. 2학기 계약이 체결되면 교원노조에 가입할 수 있지만 겨울방학에는 다시 탈퇴해야 한다. 한 학기, 6개월 단위로 쪼개기 계약이 체결되는 것처럼 6개월 단위로 교원노조 가입과 탈퇴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 해직 교원, 기간제교원이 자신의 집인 동쪽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하자 헌법재판소는 서쪽을 가리킨 셈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를 위해 설립되었다는 헌재의 대답은 그런 동문서답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되고 한참도 더 지난 지금 헌재는 아직도 19세기 단결금지 법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노동자의 단결이 금지되고,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범죄였다. 1791년 프랑스의 르 샤플리에법, 1799년 영국의 단결금지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1824년 영국의 단결금지법 폐지를 필두로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인권으로 보장되고 기본권으로 장려되었다. 교사ㆍ공무원이 노동자로서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이제 문명국가의 상식이다.

대표적인 선진ㆍ중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단 한 국가만 빼고 해직 교원, 퇴직 교원도 자유롭게 교원노조에 가입해서 조합 활동을 할 수 있고, 하고 있다. 그 한 곳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이고, 5월 28일 헌재 결정은 이를 새삼 확인해주었다. 한국은 행정부도 사법부도 여전히 노동자, 노동자의 일원인 교사, 공무원이 자주적으로 단결하는 것이 못마땅하고 싫은 것이다. 문명국가에서 200년 전 폐기된 유물인 단결금지의 법리가 2015년 한국에서 부활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향후 관건은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될 것인지 여부다. 핵심 쟁점인 법외노조통보의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은 헌재가 판단하지 않았고, 이 부분은 여전히 미완의 쟁점으로 남아 서울고등법원에서 심리될 예정이다. 과거 군사정권에서는 ‘법률’로 노동조합을 해산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산된 노동조합이 전태일 열사의 뜻을 이었던 청계피복 노동조합이다. 법률에 의한 노동조합 해산명령은 대표적인 노동악법으로 꼽혔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쳐 그 해 11월 여야 합의로 폐지되었다. 그런데 노태우정부는 1988년 4월 15일 대통령령인 ‘시행령’으로 법외노조통보로 이름만 바꿔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를 부활시켰다. 이것이 현재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통보의 근거가 된 노조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의 원형이다.

1980년 군사정권 시절에는 그나마 ‘법률, 악법(惡法)’으로 청계피복 노동조합을 해산했지만, 33년이 지난 2013년 고용노동부는 그조차 없이 ‘시행령’으로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려 했다. 이것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의 본질이다. 법률 없이 시행령에만 근거한 법외노조통보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 제37조 제2항, 기본권을 제한하는 시행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을 받아야 한다는 헌법 제75조, 행정기관은 법률에 근거하지 아니한 규제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는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를 위반한 것인지 여부가 핵심이다. 위반이라면 법외노조통보는 위법하므로 취소되어야 한다.

헌재 결정을 앞두고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과 국제교원단체총연맹(EI)은 공동으로 헌재에 ‘국제노동기준을 위반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통보는 취소되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국제노동단체가 이렇게 연명으로 특정 국가의 사법기관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자유위원회, OECD의 노동조합자문위원회 등 ‘해직자를 포함한 교원의 단결권을 보장하라’는 국제사회의 권고는 너무 많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200년 전의 단결금지 법리는 이제 그만 박물관으로 보내고, 그 빈자리는 국제기준에 따른 단결권 보장으로 채워져야 한다. TV를 키면 귀가 따갑게 들리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기업과 사용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동자, 노동자의 일원인 교원에게도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은 바로 그 시금석이자 우리 사회 법치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신인수 법무법인 소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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