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조사는 보통 무혐의 가는 수순
시효 넉넉하고 成 육성증언 있는데
대선자금 수사 외면하는 신호로
‘성완종 리스트’의 2라운드 수사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성완종(64ㆍ사망) 전 경남기업 회장한테서 2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대선 캠프 관계자 김모(54)씨에 대해 검찰이 29일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소환조사를 한 것은 그 동안 미뤄 왔던 대선자금 의혹 수사를 본격화했다고 여길 법하다. 하지만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를 제외한 나머지 리스트 인사 6명에게 이날 서면질의서를 일괄 발송한 것은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상호 배치되는, 어쩌면 모순돼 보이기도 하는 수사팀의 이날 행보는 전혀 예기치 못했을 만큼 이례적이다.
검찰 주변에선 ‘리스트 6명’ 서면조사에 무게중심을 두고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서면조사는 일반적으로 의혹 대상자를 굳이 소환할 필요까지 없을 때, 곧 ‘클리어’(무혐의) 차원에서 행하는 조사 방법이다. 남은 6명 가운데 김기춘ㆍ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이병기 현 비서실장은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거나 금품수수 단서가 전혀 없어 사실상 수사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문제는 성 전 회장이 돈을 건넸다고 한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2억원)과 유정복 인천시장(3억원), 서병수 부산시장(2억원) 등 ‘대선자금 의혹 3인방’에 대해서도 서면조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비서실장 3인방’과는 달리, 이들은 성 전 회장의 메모에 금품액수가 또렷이 적혀 있는 데다, 금품 수수 시기도 지난 대선이나 작년 지방선거 무렵일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공소시효도 넉넉하다. 특히 홍 의원과 관련해선 “대선 때 2억원을 줬고, 대통령 선거에 썼을 것”이라는 성 전 회장의 생전 육성 증언도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들의 측근 조사나 자금 추적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서면질의서를 보냈다. 따라서 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애써 외면하고, 의혹 대상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수순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성 전 회장의 돈 2억원의 ‘전달자’로 지목된 김씨에 대해 관련 진술을 확보한 지 약 40일 만인 이날 늑장 압수수색을 나간 것도 ‘면피성 조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서면조사’보다 ‘일괄 발송’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사팀은 ▦성 전 회장과 리스트 인사들의 동선 ▦금품전달이 있었다고 볼 만한 시점 ▦경남기업 비자금의 흐름 등 3가지 변수가 일치하는 지점을 추적해 왔으나, 아직까지 특별한 성과는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인물들에게만 소환을 통보하거나 서면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오히려 검찰 수사상황을 노출할 우려가 있어, 차라리 한꺼번에 서면질의서를 보내 검찰의 ‘패’를 감추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서면조사를 ‘단계’로 보지 말고, ‘기법’으로 봐 달라. 의혹 대상자 별로 그 동안 진행돼 온 (금품전달 관련) 시점과 동선 복원의 정도가 각각 다르다”는 수사팀 관계자의 말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일종의 궁여지책인 동시에 고도의 ‘눈속임’ 전략이란 것이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에 김씨와는 무관한 ‘제3의 장소’도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시점과 동선, 자금의 세가지 요인 중에서 ‘자금’의 흐름과 관련한 곳”이라며 “경남기업 관계자의 관련 진술을 확보하자마자 곧바로 압수수색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새로이 발견된 해당 장소에서 확보한 자료가 막혀 있던 수사의 돌파구로 작용할 개연성도 아직은 남아 있다.
다만 수사팀은 이날 “모든 장소와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했으나 (성 전 회장의 금품 로비 관련) 비밀 장부나 그에 준하는 자료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날 압수수색 결과물 분석으로 어떤 성과가 나오든, 리스트 인사 8명 외에 야권을 포함한 또 다른 정치인들을 향해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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