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볶음밥, 제육덮밥, 순두부찌개, 떡볶이 그리고 해물파전까지 전부 다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주장 김연경(27ㆍ페네르바체)이 중국 톈진의 한 한식당에 ‘난입(?)’하더니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메뉴판을 낭독합니다. 깜짝 놀란 사장은 일단 식당 방문부터 걸어 잠그고 메뉴를 받아 적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대표팀의 ‘한식 배달 작전’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대표팀은 20일부터 28일까지 중국 톈진에서 열린 2015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에 출전했습니다. 대회 일정은 길지 않지만 거의 보름동안 타국에 머물면서 선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 중 하나는 ‘집 밥’에 대한 향수입니다. 선수촌에서 매 끼니를 해결하지만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는 속 편한 집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는 게 선수들 얘깁니다. 충북 진천선수촌에서부터 볶음고추장, 참기름 등 양념은 물론 각종 3분 요리, 김, 컵라면까지 알뜰살뜰 챙겨간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정철(55) 대표팀 감독 역시 선수들의 이런 애로 사항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감독은 “선수촌 음식도 훌륭하지만 대회가 이어질수록 선수들은 예민해지기 마련”이라며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먹는 것은 잘 챙겨먹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감독이 지난 24일 태국과의 8강전 이후 현지 한식당에서‘삼겹살 회식’을 준비했던 이유 역시 중요한 경기를 잘 치른 선수들을 격려하고 준결승, 결승에 앞서 몸보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대회 조직위가 갑작스레 선수들의 ‘외도’를 금지하고 나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조직위 관계자는 “선수들은 선수촌에서 제공하는 음식만 섭취해야 한다. 외식을 했다가 도핑에 걸릴 수도 있다”는 억지 주장을 펼쳤습니다. 심지어 조직위는 선수촌과 한식당 근처의 보안을 강화하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감독은 “대표팀 코치ㆍ감독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아무리 도핑 기준이 엄격한 올림픽이라도 선수들이 현지 한식당에서 속을 달래는 것까지 막지는 않는다”고 토로했습니다. 선수들 역시 오매불망 기다렸던 삼겹살 회식이 불발됐다는 ‘비보’에 잔뜩 풀이 죽었습니다.
이때 고안해낸 방법이 바로 조직위의 감시를 피해 음식을 직접 숙소로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주장 김연경이 주문과 배달에 발 벗고 나섰고 선수들은 삼겹살은 아니지만 제법 모양과 맛을 갖춘 한식으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정말 조직위는 행여나 한국 대표팀이 도핑에 걸릴까봐 외식을 금지했을까요?
톈진=이현주기자 memor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