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을 멈출 수 없었다”는 서평만큼 오쿠다 히데오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로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이번에는 범죄 스릴러물에 도전했다. 가독성 좋기로 유명한 대중작가와 스릴러 장르가 만났으니 결과는 볼 것도 없이 질주, 또 질주다.
나오미는 삶에 대해 소극적인, 좋게 말하면 대단히 정중한 전형적인 일본 여성이다. 큐레이터를 꿈꿨지만 백화점 외판부 사원으로 들어가 고객들의 뒤치다꺼리를 한 세월이 어느새 7년, 건조했던 삶이 서서히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건 리아케미라는 중국인 여성을 만나면서다. 백화점 VIP 고객을 상대로 열린 행사에서 리아케미는 3,000만원이 넘는 파텍 필립 시계를 훔쳐가고, 나오미는 뻔뻔하기 짝이 없는 그를 상대로 시계를 돌려받은 뒤 다른 상품까지 판매하는 쾌거를 올린다.
다른 한편엔 나오미의 친구 가나코가 있다. 나오미보다 더 수동적인 성격의 가나코는 결혼 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으나, 남편이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얼굴에 피멍이 빠질 날이 없다. 노예처럼 사는 가나코를 본 나오미에게 어린 시절 엄마를 두들겨 패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고, 때마침 리아케미로 인해 난생 처음 ‘후안무치’의 쾌감을 맛본 그는 리아케미에게 사실을 털어 놓고 조언을 구한다.
“죽여버리세요.”
삶은 전쟁이며, 전쟁에서 양심과 죄책감은 사치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본격적으로 남편 살해 계획에 돌입하고, 여기서부터 독자는 몇 시간 동안 일상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책은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여자들이 일으키는 반란이라는 점에서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남편을 제거하려는 아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떠올리게 한다. 사건의 치밀함이나 반전의 강도, 캐릭터의 독특함, 심리 묘사 등 모든 면에서 ‘나를 찾아줘’ 보다는 몇 수 아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느려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심리 묘사나 사회 성찰 따위에 시간을 뺏기는 게 아깝다는 듯 단순한 문장만으로 미친 듯이 사건을 전개, 잠시 동안이나마 독자를 앉지도 서지도 못할 긴장 상태에 빠뜨린다.
총알택시에서 내린 뒤의 감상은, 풍경은 기억나는 게 없지만 짜릿함 하나는 일품이었다는 것. 최근 여성 혐오 풍조에 신물이 난 한국 여자들에게 의외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도 있겠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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