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5월 31일 오후 6시, 전국 671만 가구, 25만 5천 개 반에서 동시에 첫 반상회가 열렸다. 내무부가 의제를 설정했는데 내용은 장발 단속기준, 새 주민등록증 휴대, 적기에 보리베기 등 총 8개 항이었다. 대부분의 서울 지역 반상회는 “이웃에 살면서 인사도 없었으니 앞으로 서로 웃으며 인사하자”는 말과 함께 시작됐고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인 농촌에서는 모깃불을 피우고 횃불까지 밝히면서 평소 못다한 말을 이웃들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새마을의 날(매달 1일)을 하루 앞두고 지정된 첫 반상회는 꽤 성황이었다. 마을마다 출석 경쟁을 벌였고 파출소에서는 경찰까지 동원됐으며 언론도 사설을 통해 “삭막한 마을을 대화로 밝게 바꾸자”며 정부 시책에 화답했다. 첫 의도와 달리 유신시대, 정권 홍보와 주민 통제수단으로 변질된 반상회는 95년 지방자치 시대가 들어서며 차례로 폐지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관 주도가 아닌 주민 자율로 실시되고 있다. 1976년 5월 31일 저녁, 첫 반상회를 위해 서울 지역의 한 가정집에 모인 주민들이 출석을 체크하고 있다.
한국보도사진연감
손용석 멀티미디어 부장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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