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강단 점거하며 공청회 저지
고용부 강행 방침… 노정 갈등 격화
노동조합 동의가 없어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한 정부의 취업규칙 지침이 발표될 예정이던 공청회가 노동계의 저지로 무산됐다. 그러나 정부는 지침을 통한 임금체계 개편을 강행할 방침이어서 노ㆍ정간의 충돌이 예상된다.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은 28일 오후 1시30분부터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ㆍ한국노총 조합원 300여명이 공청회장을 점거하면서 공청회는 결국 무산됐다.
양대 노총이 강단을 점거한 가운데 오후 1시40분쯤 이기권 고용부 장관이 축사를 위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공청회장에 들어섰으나 노조원들이 입장을 막아 연단에 오르지 못하고 10분 만에 발길을 돌렸다. 고용부는 오후 2시쯤 “공청회 진행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초 이날 고용부는 “노조 동의가 없어도 임금피크제 도입 등 취업규칙 변경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발표할 계획이었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삭감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바꾸려면 반드시 노조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임금피크제는 그 대상에서 예외가 된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 노조 동의 없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들며 “근로자는 정년연장에 따른 이익이 있고, 정년연장에 따른 기업의 재정ㆍ인력채용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임금체계를 개편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지침 초안에 따르면 정부는 사측이 취업 규칙을 변경하기 위해 노사 협의 등 상당한 노력을 했는데도 노조가 대안 제시 없이 논의를 거부하는 경우 취업 규칙을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판단에 대해 노동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조상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위원장은 “행정권을 남용한 독재”라고 말했다.
노조는 권고사직 등으로 지금도 정년을 채우는 노동자가 드문 상황에서 임금피크제 마저 도입되면 임금삭감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노동계는 “퇴직 전 3개월 급여로 산정하는 퇴직금이 줄어 노후빈곤 가능성이 커지고,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절약한 인건비를 기업이 청년 고용에 쓸 보장도 없다”고 주장했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향후 공청회 일정은 미정”이라면서도 “기업의 임단협 협상 종료 시점(8월 말)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해 지침 배포 강행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악화 일로인 노ㆍ정 갈등도 격화할 전망이다. 당장 오는 7월4일 민주노총ㆍ한국노총 제조부문 노동자들이 서울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 총파업 결의대회를 갖는다. 한국노총도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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