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설]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추진, 노동계와 대화 먼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설]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 추진, 노동계와 대화 먼저

입력
2015.05.28 17:07
0 0

고용노동부가 근로자 동의 없이도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고용부는 어제 열린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에 앞서 ‘사회통념상 합리성 판단요건을 갖춘 경우 회사가 노조나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임금피크제를 도입해도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취업규칙 변경지침’을 공개했다. 고용부는 공청회를 거쳐 이 지침을 다음달까지 확정해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노동계는 즉각 공청회 저지에 나서는 등 격렬히 반발하고 나섰다. 지침이 공연한 갈등만 증폭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고용부가 논란의 여지가 큰 지침을 굳이 추진하려는 배경은 임금피크제 도입 촉진을 위해 노사정협의에서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려던 시도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경우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으로선 임금삭감이 전제인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면 여전히 근로자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에 고용부는 ‘사회통념에 비춰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 동의 없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근거해 임금피크제 도입의 ‘우회로’가 될 이번 지침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물론 고용부 지침도 사측의 일방통행식 임금피크제 도입을 부추기겠다는 건 아니다. 취업규칙 변경으로 근로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 사측의 취업규칙 변경 필요성,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여부, 충분한 협의 노력 등을 고려해 합리성 여부를 판단하고 감독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가 상시화한 노동현실에서 이런 지침이 사측에 의해 악용될 위험은 매우 크다. 합리성 요건만 형식적으로 맞춘 뒤, 사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행할 수 있다. 특히 국내 근로자의 90%가 비노조원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대부분 근로자로서는 정당한 주장의 기회조차 잃게 될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정년연장에 맞춰 임금피크제라도 도입해 ‘청년 고용절벽’을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정책적 절박성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왠지 조급하게 느껴지는 이번 지침은 자칫 소기의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도 내지 못한 채 기업현장에 공연한 노사갈등만 부추길 위험이 적지 않다. 정년연장으로 수혜를 입게 된 기존 근로자들이 조금 양보해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자는 논리와 명분 자체는 누구도 거부하기 어렵다. 따라서 핵심은 노동계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합리성 요건이다. 정부가 정말 이러한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노동계와 성의 있는 대화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