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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안 하면 이자 안 받아… 태국 승려 '착한 대부업'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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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안 하면 이자 안 받아… 태국 승려 '착한 대부업' 20년

입력
2015.05.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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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스템일까, 3~5명 묶어 소액 대출

한 명이 안 갚아도 공동책임… 이익 일부 돌려줘

성공 비결은 뭘까, 선행 등 불교 계율 강조

'무언의 공동체적 압력' 효과… 자본 규모 650억원으로 성장

프라수빈 파니토(오른쪽) 승려가 두리안 농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짓 사타랄라이씨와 신용조합 대출에 대해 상담을 하고 있다. ●WSJ 동영상 캡처.
프라수빈 파니토(오른쪽) 승려가 두리안 농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두짓 사타랄라이씨와 신용조합 대출에 대해 상담을 하고 있다. ●WSJ 동영상 캡처.

거짓말을 안 하면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는 대출이 있다.

태국의 승려가 이런 이색적인 조건을 내건 소액 대출 시스템을 20여년째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불교 승려들은 금융업과 같은 속세 일과 거리가 멀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태국 북부 캄보디아 접경 지역 작은 마을의 승려 프라수빈 파니토는 이런 선입견에서 자유로운 인물이다. 그는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보면서 팔을 걷고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그는 수천 바트(1,000바트=약 3만3,000원)를 종잣돈으로 소액대출 신용조합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은 프라수빈 스님에게 돈을 빌려 집을 고치고 농기구를 구입했으며 이자율이 높은 빚을 갚는데 썼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이 신용조합의 규모는 6,000만달러(약 650억원)으로, 초기 투자금 대비 200만배로 커졌고 조합원은 6만6,000여명에 달한다. 이제는 태국 76개주(州) 가운데 40개주에서 불교 승려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신용조합을 세워 자금을 운용할 정도다.

조합, 어떻게 운영하나

조합원들은 형편에 따라 매달 10~500바트(300~1만6,000원)의 회비를 낸다. 조합원이 대출을 받고 싶을 경우, 같은 조합원 가운데 보증인 3~5명을 확보, 이들이 조합에 낸 금액에 상응하는 액수를 빌려 쓸 수 있다. 대출 금리는 월 1~2% 정도인데, 다른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으면 무이자 대출도 가능하다. 보통 대출 당사자의 가족이나 친구가 보증을 서는데, 나중에 자신도 대출받아야 하는 경우에 대비해 조합원들끼리 돌아가며 보증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대출을 해 발생한 이익의 절반은 매년 조합원들에게 돌려주며, 일부는 마을 복지기금으로 사용한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빚을 갚지 않는 ‘채무 불이행’ 건수가 한 건도 없으며, 일부 상환이 연체된 대출자가 있지만 조합과 꾸준히 연락하면서 상환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신용조합 관계자들은 전했다.

두짓 사타랄라이씨의 경우 1992년 두리안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지역 농업협동조합으로부터 연 8%의 금리로 30만바트(약 990만원)를 빌렸다. 하지만 농장 운영은 쉽지 않았고 20년 정도 지나자 금리는 13%로 올랐으며 농장은 은행에 담보 잡힌 채 이자를 갚는데도 허덕였다. 하지만 2013년 신용조합으로부터 월 금리 0.5%에 40만바트(약 1,310만원)를 빌려 기존 빚을 갚는 한편, 농장 운용 자금으로도 사용했다. 2년이 지난 후 두짓씨는 원금의 절반을 갚는데 성공했다. 두짓씨는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말에는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대출 시스템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경제학에서는 ‘집단대출(group lending)’이라고 정의한다. 소액 대출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집단(3~5명)으로 묶으면서 대출자금반환을 5인 공동책임으로 연대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대출자 중 한 사람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나머지 4명이 공동 책임져야 한다. 일종의 사회적 담보를 설정한 것이다. 이와 함께 대출 이자는 낮게 적용, 이자 부담을 줄임으로써 상환 부담을 완화시킨다.

프라수빈 스님의 성공 비결은

프라수빈 스님이 운영하는 신용조합에는 특별한 이자율 조항이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술 마시지 않기 등 불계(佛戒)를 잘 지키는 대출자는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프라수빈 스님은 “은행 등 금융기관은 대출자의 신용점수나 담보물, 자산 등을 근거로 이자율을 책정한다”며 “하지만 우리 신용조합은 대출자가 얼마나 선행을 하고 불계를 잘 따르는지는 평가한다”고 말했다.

물론 ‘무이자 대출’ 때문에 신용조합의 이익이 다소 줄어들 수도 있고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을 강조하다 보니 빚을 갚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프라수빈 스님의 설명이다. 그는 이 현상을 ‘무언의 공동체적 압력(peer-pressure)’라고 말했다. 프라수빈 스님은 “평소 정직하지 않아 다른 조직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돈을 빌리려고 할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며 “조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열심히 일하며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프라수빈 스님의 신용조합은 상환을 잘 하는 대출자에게 다음달 금리를 낮춰준다. 2014년 태국 시중은행의 미상환 금액은 2,782억바트(약 9조원)나 되며 이 가운데 미상환 비율이 약 2.16%인 점을 감안하면, 프라수빈 스님의 신용조합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알 수 있다.

기존 은행권도 프라수빈 스님의 신용조합 시스템에 대해 긍정적ㅇ로 평가하고 있다. 아유다은행 관계자는 “대출과 예금을 함께 장려하는 형태는 농촌 등 저소득층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다”며 “운영비가 많이 투입될 수 밖에 없는 대형 은행은 이런 구조에 끼어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태국 중앙은행에 따르면 태국 가계(家計) 가운데 약 90%가 금융 대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또 태국인 170만명 이상이 비공식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고 있으며 이 중 약 33만5,000명(19.7%) 가량은 악덕 사채업자들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시스템도 약점을 갖고 있다. 프라수빈 스님 같이 설립자의 카리스마에 의해 조합의 성공이 좌우된다는 점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 관계자는 “만일 그 인물이 사라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며 “한 개인의 리더십에 지나차게 의존하는 것은 때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들도 “남다른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던 리더가 사망하거나 다른 지역의 조합으로 옮길 경우,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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