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자체 반성과 체질개선 노력이 안 보여
‘김상곤 혁신위’의 어깨가 한결 무거워
불가피한 중간ㆍ중도로의 ‘우(右) 클릭’
야당은 왜 존재하는가? 원론적으로 국민 입장에서는 선택을 그르칠 경우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다. 국민의 지지로 탄생한 정권과 여당이 국민 다수의 바람과 동떨어진 길을 가려고 할 때, 그게 아니라고 가로막아야 할 존재다. 반면 정당 입장에서 야당은 집권당이 되기 위한 도움닫기 내지 역량축적 과정의 잠정적 존재다.
따라서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두는 이념정당이라면 몰라도, 수권(受權)을 겨냥하는 제1 야당으로서는 결코 오래 머물 자리가 아니다. 제1야당이 국민 다수의 뜻을 부단히 점검해야 하는 것은 그것만이 정치보험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정권획득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길인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김상곤 전 경기 교육감을 혁신위원장에 임명, 당 위기 극복의 첫발을 내디뎠다.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전권을 위임, 내부 혁신을 위한 형식 요건은 갖춰졌다. 김 위원장은 현재 제1야당 최대의 내부 문제인 계파 간의 불화나 친노(親盧)의 지배적 영향력에서 자유롭다. 경기 교육감으로서 보여준 선도적 교육개혁 성과와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자세, 확고한 소신과 융통성이 조화된 성품 등에 비추어도 적임자다.
그런데도 솔직히 그가 이끌 야당의 변화를 낙관할 수 없다. 문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얼마든지 스스로 댕길 수 있는 불을 다 죽여놓고 뒤늦게 미약한 불씨만 김 위원장에 건넨 것이 첫째 이유다. 4ㆍ29 재보선 참패는 지난해 7ㆍ30 재보선 패배보다 훨씬 참혹했다. 최소한 정치도의 측면에서라도 당 지도부가 총사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일 만했다. 그러나 문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이를 꺼리는 대신 ‘막말 파동’으로 실망만 보탰다. 그런 의사결정의 근거였을 ‘정치현실적 고려’가 결국 혁신위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말은 전권위임이고 기득권 포기 다짐도 거창하지만, 간단한 자기비판에도 무심했던 사람들이다.
보다 큰 이유는 필요한 개혁의 핵심 내용이 드러난 마당에 굳이 혁신위에 그 발견을 맡기는 절차 전체의 허구성이다. 당 체질 문제라는 진단과 개선 처방이 거듭됐는데도 그에 응하지 않으면서 자질구레한 증상을 다시 더듬어 그 원인인 체질을 새삼 확인하려는 것과 같다. 책임론을 희석하려는 시간 끌기거나, ‘한참 돌아 제자리’에 그치리란 우려가 지워지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나 ‘성완종 리스트’ 파문 등의 호재를 가지고도 잇따라 선거에서 졌으면, 마땅히 여론과 정치지형 변화를 어디서 잘못 읽었는지를 되짚어야 했다. 일방적 정부여당 비판과 소수 특정 이해집단의 주장에 지나치게 기운 것이 국민 다수의 눈밖에 난 요인이라면 그런 정치노선과 행태를 바꿔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정치지형 분석이 당내에서 나온 지 오래라면, 그에 맞추어 스스로의 인식과 행태를 바꾸면 그만이다.
변화의 방향과 그에 필요한 지혜는 멀리 있지 않다. 야당의 성공한 역사에도 얼마든지 있다. 논란이 무성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고 나면 야당의 성공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오랜 민주화 투쟁으로 압도적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도 DJ는 늘 국민 다수, 특히 계층과 이념에서의 중간층, 중도파를 늘 염두에 두었다. 동교동 자택 응접실에는 늘‘윤집궐중(允執厥中)’이란 편액이 걸려있었다. ‘진실로 그 가운데를 잡으라’는 중용(中庸)의 글귀다. 고정된 중간이 아니라 수시로 변화하는 상태의 한가운데인 ‘시중(時中)’의 파악이 좌우명이었던 셈이다.
새정치연합이 만년야당으로 남을 작정이라면 몰라도, 더 많은 국민 지지를 얻어 정권 탈환을 기약하려면 결국 정책과 이념노선의 ‘우(右) 클릭’을 피할 수 없다. 소수자 보호도 중요한 가치지만 그것이 국민 다수의 뜻에 어긋나면, 다른 정당에 넘길 수 있어야 한다. 당장 그런 기준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기왕의 태도부터 따져볼 수 있어야 야당 회생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 각성과 결단을 각오할 수라도 있어야 혁신의 앞길이 열린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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