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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º] 로봇의 오늘, 인간의 내일

입력
2015.05.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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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면 신문기자들의 사기를 뚝 떨어뜨리는 외신이 들려온다. 커리어캐스트 닷컴의 집계를 인용하는 보도로, 미국 내(다행히 전 세계 집계는 나오지 않았다!) 최악의 직업 1위를 놓고 신문기자와 벌목공이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연봉은 최저 수준, 전망도 엉망이라는 게 이유이다. 연봉이야 그렇다 쳐도,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2억 5,000만 달러에 살 정도인데 신문기자들의 장래가 이다지도 어두울까. 전망이 이토록 나쁘다는 것은 누군가, 혹은 무엇이 그 업종을 대신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문기자 그리고 벌목공의 자리는 다른 어떤 직종보다 빠르게 ‘무엇’에 의해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이다. 공교롭게도 불운한 두 업종의 앞날을 위협하는 ‘무엇’은 공통되게 로봇이다.

‘롯데는 22일 열린 2015 프로야구 LG와의 홈경기에서 12-20으로 크게 패하며 홈 팬들을 실망시켰다.(중략) 나성용은 1회 초 2아웃에 맞이한 타석에서 4점을 뽑아내며 LG와의 8점차 승리를 이끈 일등공신이 됐다.’ 지난 22일 LG 트윈스가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난타전을 치른 후 8점차 승리를 거뒀다는 내용의 프로야구 기사이다. 겉보기엔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흔하게 접할 것 같은 신문기자의 기사인듯하다.

이 기사는 로봇이 작성한 것이다. 이미 로봇기자가 지진 기사를 상업용도로 공급하는 수준에 이른 미국의 사례가 아니다. 이준환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구팀이 구현한 로봇저널리즘 서비스를 통해 생산된 기사이다. 이 교수 팀은 지난해부터 페이스북 ‘프로야구 뉴스로봇’으로 하루 다섯 건 가량의 로봇기자 기사를 ‘출고’중이다. 사람 기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데이터를 정리해 그 중 가장 뉴스가치가 있는 ‘이벤트’를 추출하고 기사의 리드를 잡아 써내려 간다.

머지않은 미래, 프로야구 기사를 쓰는 신문기자는 짐을 싸야 할까. 그렇진 않아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한글로 기사를 쓰는 신문기자들의 미래를 위협하기엔 로봇 기자의 한계가 아직 뚜렷하다. 한글은 영어와 달리 형태소 분석이 까다롭고 단어가 지니는 의미와 뉘앙스가 너무 다양해 로봇의 ‘감성’으로 이를 인간 기자만큼 유연한 문장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예를 들어 NC 다이노스의 투수 이태양을 선수가 아닌 ‘태양’으로 인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로봇기자뿐 아니라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로봇의 현재는 다행스럽게도 상상해온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인간형 로봇 휴보를 개발한 오준호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6월 미 캘리포니아주 포모나에서 열리는 국제 재난대응 로봇 경진대회(DRC) 준비에 한창이다. 이 대회는 로봇이 얼마나 빨리 홀로 차를 운전하고, 닫힌 문을 열고, 드릴로 구멍을 뚫고, 험난한 지형을 통과하는지를 겨루는 시합이다. 물론 전세계 최첨단의 로봇기술이 총 집합하는 무대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역시, 다행스럽게 어떤 로봇도 아직 인간보다 능숙하게 재난을 헤쳐나가진 못한다. 문을 열다가 갑자기 바람이 불어 닫히는 상황까지 가늠해 움직이느라 굼뜨고, 고꾸라지기라도 했다간 목이 부러질 수 있을 만큼 약하다. 로봇 소방관이 영웅 대접을 받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로봇, 저주인가 축복인가’라는 보고서에서 로봇이 인간 노동자의 자리를 빼앗아가는 추세가 빨라져 사회 후생이 크게 악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8세에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로 임용됐던 이 천재 교수의 전망이 어긋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청년실업난과의 일전으로 진이 다 빠진 인간 노동자가 이번엔 쇳덩어리 로봇과 다시 힘겨운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관측은 매몰차기까지 하다. 한동안 로봇기자의 기사 솜씨가 지금처럼 미덥지 않고, DRC의 소방 영웅들이 임무수행에 서툴기를 바래본다. 로봇의 오늘이 항상 인간의 행복한 내일을 담보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양홍주 경제부 차장대우ㆍ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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