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를 보고 첫 평론을 쓴 지 16년이 지났다. 한국 영화 전반에 관심을 갖게 만든 첫 영화가 뭐냔 질문을 자주 받았다. 통상 ‘8월의 크리스마스’(1998)라 대답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한국 영화들보다 한국 관객들한테 먼저 감명을 받았다는 게 더 솔직한 대답이다.
내가 한국에 온 건 1997년 8월이다. 몇 주 뒤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게 됐다. 홍콩 배우 량차오웨이(梁朝偉)를 뒤쫓는 여학생들 무리에 휩쓸려 거의 죽을 뻔했지만 영화를 향한 한국인들의 열정이 놀랍기도 했다. 그 열의는 극장에 가거나 씨네21, 키노 등 영화 잡지를 훑어볼 때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 사람들이 영화보다 스포츠에 더 열광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대중들의 생활에 영화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후 긴 시간이 흘렀지만, 한국 관객은 여전히 한국 영화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다. 홍콩 영화 감독 첸커신(陳可辛)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역시 한국 관객들이 예측할 수 없고 세련된 취향을 갖고 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내 느낌은 조금 더 복합적이다. 오늘날 한국 관객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갖고 있는 것 같다.
분명 한국과 다른 나라 관객은 다르다. 대부분 국가에서 영화관 입장권 매출액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를 이용해 집에서 영화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입장 매출이 기록적 수준인, 드문 나라다. 여기엔 문화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 젊은이들은 친구와 집에서 만나기보다 카페나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향이 강한데 이건 훌륭한 일이다. 영화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큰 스크린을 통해 봐야 하는 법이다.
개별 영화의 박스 오피스(흥행 수익) 성적을 보면, 한국 관객이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취향을 따르지 않는단 사실도 알 수 있다. 독특하고 종잡을 수 없는 고유 취향을 갖고 있는 게 이들이다. 오스카상 수상작인 미국 독립 영화 ‘위플래쉬’는 협소한 한국 시장(1,140만달러)에서 북미(1,310만달러)에 필적하는 수익을 올렸다. 음악 영화인 ‘비긴 어게인’은 더 극단적인 경우다. 한국에서 2,450만달러를 벌어들인 이 영화가 미국과 캐나다에선 1,620만달러를 버는 데 그쳤다. ‘인터스텔라’나 ‘킹스맨’처럼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도 흥행 성과가 좋긴 하지만, 한국에서 거둔 예상 밖의 엄청난 흥행 성적은 세계 박스 오피스 추세를 주시하는 이들한테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일이었다.
이런 박스 오피스 수치를 보는 건 즐겁다. 한국 관객의 이런 차별적인 독립성이 나는 좋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한국 관객들의 영화 취향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한국만큼 자국 영화 산업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나라가 세계를 통틀어 별로 없단 사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인 구석도 있다. 전체를 놓고 보면 독립적 성향이 강한 한국 관객을 쪼개 놓고 보면 다른 나라 관객들보다 외려 의존적이란 게 내가 관찰한 바다. 한국인들은 어떤 영화를 볼지 정할 때 대다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영화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 가령 ‘위플래쉬’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하면 한국 관객은 그걸 보기 위해 무리 지어 극장으로 달려 간다. 입소문 내는 데 성공한 영화들은 쾌재를 부르겠지만 주목을 못 끈 영화들은 어쩌란 말인가. 간과된 영화 중에도 성공할 자격이 있는 걸작들이 더러 있으나, 결과는 실패다.
이는 박스 오피스에, 나아가 한국의 문화 생활에 다양성이 부족하단 걸 의미한다. 그게 중요하냐고? 우리 자각보다 결과는 훨씬 심각하다. 주목 받지 못한 영화 제작자들은 분명 비통할 테고, 그건 다양성 결핍과 문화 전반적인 이야기ㆍ아이디어 빈곤을 야기할 게 뻔하다.
내 바람은 한국 관객들이 영화를 고를 때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극장에 걸린 모든 영화들에 대한 정보를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그들이 조금 덜 신뢰하고 개인적인 느낌과 기호에 따라 영화를 고른다면 한국 박스 오피스는 지금보다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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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w been 16 years since I wrote my first review of a Korean film. So I’m often asked the question: which film first inspired you to take a strong interest in Korean cinema? I usually answer Christmas in August (1998), but if I really stop to think about it, the more honest answer is that before I became impressed with Korean films, I was impressed with the Korean audience.
I moved to Korea in August 1997, and a few weeks later I attended the 2nd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lthough narrowly escaping death after accidentally getting in the way of a crowd of schoolgirls chasing after Hong Kong actor Tony Leung Chiu Wai [양조위], I came away impressed by Koreans’ passion for cinema. I could feel that enthusiasm when I went to the cinema or paged through copies of the film magazines Cine21 or Kino. In the US, passion for sports generally overpowers passion for cinema, but in Korea, film seemed to play a greater role in many people’s lives.
Much time has passed since then, but the Korean audience is still one of the most interesting things about Korean cinema. I once had the chance to interview Hong Kong director Peter Chan Ho Sun [진가신], and he kept praising the Korean audience for its unpredictability and sophisticated taste. My own feelings are slightly more mixed: it seems to me that there are both good and bad points to today’s Korean audience.
Certainly,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the audience in Korea and in other countries. In most places around the world, theatrical admissions are plummeting, as more and more people watch films at home through Netflix or other services. But Korea is one of the few countries in the world where theatrical admissions are at record levels. There may be cultural reasons for this: young Koreans are less likely to meet their friends at home, and more likely to spend time in cafes or watching movies. But I think it’s also an expression of Korea’s enthusiasm for films. I think this is great ? films are meant to be watched on the big screen, together with lots of other people.
If you look at the box office performance of individual films, you can also see that the Korean audience doesn’t follow global tastes, but has its own unique and unpredictable tastes. The Oscar-winning American independent film Whiplash earned almost as much money in tiny Korea than it did in North America ($11.4 million in Korea vs. $13.1 million in North America). The music drama Begin Again is an even more extreme case: $24.5 million in Korea vs. $16.2 million in the US and Canada. The bigger-budget films Interstellar and Kingsman did well at the box office in many countries, but their unexpectedly strong performances in Korea came as a bit of a shock to people who follow global box office trends.
Seeing box office numbers like this makes me happy. I like this independent-minded streak in the Korean audience, and in general I do think that Korean viewers have good taste in movies. I’m particularly happy that Korea is one of the few countries in the world to take such a strong interest in their domestic film industry.
But there is a paradox here as well. Although the Korean audience as a whole is independent-minded, I think it’s also true that individual viewers in Korea are less independent-minded than viewers in other countries. When people in Korea choose what film to see, they often seem to choose the films that many other people are talking about. If everyone starts talking about Whiplash, the Korean audience is like a big crowd that rushes to the theater to watch it. That’s great for the films that are successful, but what about the films that don’t capture the spotlight? Sometimes, among those overlooked films, there are outstanding works that deserve to succeed, but which instead end up failing.
This means less diversity at the box office, and ultimately in Korea’s cultural life. Does it matter? I think the consequences are greater than we realize. It obviously results in heartbreak for the filmmakers whose works get overlooked. But less diversity also means fewer ideas and fewer stories flowing through the culture.
My hope is that when Korean viewers choose which film to watch, they become a bit more active, and spend a bit more time learning about all the films that are screening in theaters. If viewers trusted other people’s opinions a bit less, and went with their personal hunches and preferences, then that might result in more diversity at the Korean box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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