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세계 스포츠 무대에서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행세해 온 국제축구연맹(FIFA)의 뇌물 관행에 철퇴를 가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사법당국은 27일 스위스 검찰에 요청해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국 선정과정에서 돈세탁과 신탁금지법을 위반한 혐의로 FIFA 집행위원회 간부 7명을 전격 체포한 데 이어 이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수사할 예정이다.
로레타 린치 미국 법무장관은 이들을 포함한 FIFA 전·현직 간부 9명이 광고권 등을 대가로 스포츠마케팅회사에서 뇌물을 받아 국제 축구계를 타락시켰다며 이들과 뇌물 제공에 간여한 5명 등 총 14명을 기소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미국 법무부는 FIFA 뇌물 스캔들의 몸통인 이들이 1991년 이후 24년간 무려 1억5,000만 달러(약 1,675억원) 이상의 돈을 착복한 것으로 파악했다.
미국이 스위스 검찰에 FIFA의 뇌물 관행을 단죄하겠다고 밝힌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이들이 뇌물 수수를 미국에서 논의했고, 미국 은행을 통해 돈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뇌물 추문에 연루된 FIFA 간부들과 주변인들을 기소할 미국 검사들도 현행 미국 법에 규정된 세금, 은행 규제 법률에 따라 국외에서 벌어진 뇌물 사건 주범들을 자국 내에서 재판받도록 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다고 자신한다.
미국 법무부가 자국법 위반을 FIFA 스캔들 수사의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려는 조처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는다.
CNN 방송에 따르면, FIFA가 주관하는 월드컵 축구대회에 가장 많은 TV 중계권료를 내는 곳이 미국 방송사이므로 미국 정부는 FIFA와 검은 유혹의 유착 수사로 사법권역을 넓히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실제 폭스 방송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영어·스페인어로 2018년·2022년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는 대가로 4억2,500만 달러를 제시해 FIFA에서 중계권 계약을 따냈다. 북미 지역 방송 시장은 FIFA의 중계권 계약에서 가장 큰 부문을 차지한다고 CNN 방송은 소개했다.
국제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긴 이번 수사의 이면에 뉴욕 검사 출신 삼총사의 인연이 직간접적으로 얽힌 점도 흥미를 끈다. 린치 법무장관은 뉴욕 동부지검 연방 검사로 활약하며 FIFA 수사를 벌여왔다. 3년간 FIFA 뇌물 스캔들을 조사해 온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제임스 코미 국장은 뉴욕 남부지검 연방검사 출신이다.
CNN 방송은 코미 국장의 후임으로 뉴욕 남부지검 검사를 지낸 마이클 가르시아의 활약상도 조명했다. 가르시아 전 검사는 FIFA 윤리위원회 수석 조사관으로 2018·202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 관련한 비리의혹을 조사해오다 지난해 12월 FIFA의 리더십 결여를 주장하고 사표를 던졌다. 그는 19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430쪽 분량을 보고서를 작성했으나 FIFA는 이를 42쪽 분량으로 압축해 발표했다. 가르시아 전 검사는 “사실과 결론이 왜곡됐고, 불충분하고 잘못된 내용으로 가득찼다”며 FIFA의 행태를 맹비난했다.
FIFA의 자정 노력이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가르시아가 뉴욕 검사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코미 국장과 린치 법무장관에게 FIFA 내부문제점을 고발했을 개연성이 있는 대목이다.
미국 출신으로 FIFA 고위 간부이자 북중미축구협회(CONCACAF)의 2인자로 이번 추문에 연루된 척 블레이저는 세금 체납으로 장기간 징역형이 예상되자 미국 사법 당국의 정보원으로 변신해 FIFA 내부자료와 간부들의 녹취록을 수사 당국에 제공, 관련자들의 체포에 결정적인 노릇을 했다.
미국 당국의 수사 발표가 나자 평소 FIFA의 폐쇄적인 운영에 쓴소리를 퍼붓던 영국 축구의 전설 게리 리네커와 스탠 콜리모어 등 스타들이 두 손 들어 환영했다. 리네커는 트위터에서 “FIFA가 결딴나고 있다. 아름다운 경기인 축구에 생길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반겼다. 스탠모어도 “FIFA에 태클을 걸 나라는 미국뿐"이라면서 "린치 장관과 미국 법무부가 일을 잘했다”고 트위터에 썼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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