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육아로 노동시장서 이탈하면
재취업 땐 비정규 저임금 노동뿐
"경력단절 막는 게 근본적 방안"
공무원 생활을 하다 2002년 육아 문제로 퇴직한 곽모(49)씨는 현재 경기 고양의 한 유치원에서 계약직 보조교사로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으며 3년째 하루 5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나중에 마늘 까기, 인형 눈 붙이기 같은 부업을 할 생각 아니면 조금만 견디라”는 직장 동료의 만류도 뿌리치고 육아를 택했지만,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뒤 곽씨가 다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넷째 아이가 6살이 되던 2011년부터 곽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과거 공무원 경력이 있어 공무원 대체인력 선발 때마다 지원했지만 8번이나 미끄러졌다. 4년제 대학 유아교육과를 나와 취득한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활용하려 했지만 이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곽씨는 “면접 볼 때마다 ‘나이가 많다’ ‘동료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돼 ‘사회에서 나는 필요 없는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다”며 “예전 직장 동료들이 공직에서 계장, 과장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 과거 선택에 대한 후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임신ㆍ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여성들을 저임금ㆍ비정규직 노동에 시달리게 하는 핵심 문제다. 사회적 보육서비스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ㆍ육아는 여성들의 사회 생활에 큰 장애물이 되고, 이들이 다시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릴 때 대형마트 판매직, 청소, 간병 등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정부의 일자리 대책 역시 저임금ㆍ단순 업무에 집중돼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출산 시기인 3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0~34세의 경우 58.4%, 35~39세는 55.5%로 나이가 들수록 감소한다. 그러다 40대 초반부터 63.9%로 다시 증가하는데, 임신ㆍ출산ㆍ육아ㆍ교육 등으로 일을 그만 뒀다가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재취업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일자리가 마트 판매원 같은 비정규 서비스직 중심이어서 대학을 나온 고학력 30대 여성들은 아예 노동시장에 나오지 않고, 40대 이후에는 생계형으로 일자리를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서 경력 단절 여성(경단녀)을 반기는 건 비정규ㆍ저임금 일터다. 수도권에서 시간제 유치원 보조교사로 근무하는 이모(43)씨는 “최저임금(5,880원)보다 290원 많은 시급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올해 3월 서울시 거주 경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7.1%가 ‘일자리부족ㆍ저임금 개선’을 시급한 해결과제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겉돌고 있다. 경단녀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 만든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해 2009~2013년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받은 여성 88만5,000명 중 51만7,000명이 취업에 성공했으나 이들 중 67.1%(2012년 기준)는 1년 이내 퇴사했다. 3명 중 1명은 3개월도 안 돼 일을 그만 뒀는데, 일자리가 대부분 저임금ㆍ단순노무직이기 때문이다. 2013년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해 재취업한 여성 중 최저임금 130% 이상을 받는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를 얻은 경우는 100명 중 5명에 불과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 고용을 확대해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정부 목표가 무색할 정도”라며 “야근과 잦은 회식 등 일과 가정이 양립하기 어려운 우리 직장문화를 바꾸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경력단절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저임금 노동의 덫에 빠진 여성들을 위하는 근본적인 방안”이라며 “육아휴직 이후에도 인사ㆍ업무상 불이익 없이 일터로 복귀할 수 있는 가족 친화적 고용환경 조성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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