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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전기발전소 터 경복궁 영훈당서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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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전기발전소 터 경복궁 영훈당서 발굴

입력
2015.05.2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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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 전구 발명 불과 8년 뒤

1997년 고종 지시로 설치

고려대 소장 경복궁배치도와 일치

한국 최초의 전기발전소 전기등소(電氣燈所) 터가 발견된 경복궁 영훈당 터 북쪽. 왼쪽 위에 있는 향원지에서 냉각수를 끌어와 가동했다. 문화재청 제공
한국 최초의 전기발전소 전기등소(電氣燈所) 터가 발견된 경복궁 영훈당 터 북쪽. 왼쪽 위에 있는 향원지에서 냉각수를 끌어와 가동했다. 문화재청 제공

고종의 거처를 밝히기 위해 한국 최초로 전기를 만든 발전소인 전기등소(電氣燈所)의 위치가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 영훈당(永薰堂) 터 북쪽에서 기록으로만 알려져 있던 전기등소의 흔적을 발굴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에 발견된 전기등소는 발전기를 설치한 본 건물의 일부와 석탄을 저장하는 탄고(炭庫) 등 건물 4채로 이뤄져 있다. 1887년에서 1890년 사이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대 소장 ‘경복궁배치도’ 기록과 일치한다. 경복궁배치도에 따르면 전기등소 본채는 가로 5칸, 세로 2칸짜리 건물로 그 면적은 62.5㎡다. 본채 남쪽에 있는 탄고와 서쪽에 있는 부속건물 2채까지 모두 합하면 전기등소의 총 규모는 25칸으로 추정된다.

발굴 장소에서는 실외 조명용 아크등의 원재료인 탄소봉과 유리절연체, 연료로 사용된 석탄과 슬래그(석탄을 쓰고 남은 찌꺼기)가 출토됐다. 전기발전소로 사용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지금까지 전기등소는 경복궁 북쪽 호수인 향원지(香遠池)의 북서쪽, 고종의 거처였던 건청궁(乾淸宮) 바로 앞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는 등화사연구가 안겸(岸謙)이 1936년 경복궁에서 오래 일했던 안 상궁과 면담하고 남긴 기록에 따른 것이었다.

전기등소 터에서는 아크등을 구성하는 탄소목(왼쪽부터), 유리 단열재, 전구 몸체 등이 출토됐다. 문화재청 제공
전기등소 터에서는 아크등을 구성하는 탄소목(왼쪽부터), 유리 단열재, 전구 몸체 등이 출토됐다. 문화재청 제공

전기등소는 조선 고종 24년(1887년) 1월 미국 에디슨전기회사에서 파견된 전기기사 윌리엄 매케이가 설치했다. 이 건물에 증기엔진을 이용한 화력발전기인 에디슨 다이나모 발전기 3개를 설치했다. 이는 16촉광(燭光ㆍ양초 1개 밝기) 백열등 750개를 밝힐 수 있는 설비다.

이 곳에서 발전된 전기는 왕과 왕비가 머무르던 건청궁 내 장안당(長安堂)ㆍ곤녕합(坤寧閤)의 대청과 앞뜰을 밝히는 데 쓰였다. 정자 향원정(香遠亭) 주변의 아크등에도 불이 들어왔다. 전깃불은 발전 과정에서 냉각용수로 향원지의 물을 끌어다 써 ‘물불’이라 불렸다. 불안정한 발전 시스템 때문에 제멋대로 켜졌다 꺼졌다 하여 ‘건달불’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한국에 전기가 도입된 것은 1879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불과 8년 뒤의 일이다. 민병근 전기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섭정 기간을 거쳤던 고종은 서양 문물에 관심이 많았다”며 “고종 자신이 머무는 건청궁에 전깃불을 밝힌 것은 아버지와 달리 개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전기등소는 1894년 옛 병기창 자리(현재 국립민속박물관 부근)에 제2전기등소가 설치되면서 철거됐다. 지금 건물 자리에는 나무 여섯 그루와 산책로가 들어서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조선 최초 전기발전소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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