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작가 프로젝트그룹 '시징맨'
상상도시 '시징'서 기존 질서 비틀어
“(시징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지시 중 한 가지를 반드시 시행해야 합니다. 첫째, 환하게 미소를 짓거나 호탕하게 웃어야 합니다. 둘째, 노래를 한 곡조 불러야 합니다. 셋째, 매력적인 춤을 추어야 입장이 가능합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심사원의 승인에 의해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중국의 첸 샤오시옹, 일본의 오자와 쓰요시, 한국의 김홍석이 2006년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시징맨’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선보이는 ‘시징의 세계’는 세 작가가 상상한 도시 ‘시징(西京)’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입장부터 어처구니없는 시징은 기존 사회 질서를 비트는 위트로 가득하다.
전시장 입장은 실제 국가간 이동 과정에서 보이는 까다로운 입국심사과정을 풍자하고 있다. 시징에 들어가려면 시징에 어울리는 유머러스한 춤과 노래를 출입국 심사원에게 선보이면 된다. 원하는 기간 무제한으로 머물 수 있지만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나 ‘너무 냉철한 사람’은 입국이 제한된다. 시징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란다. 시징은 현대인들 사이의 신뢰와 공동체 의식이 회복된 파라다이스로 묘사된다.
나라 안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축제 ‘시징 올림픽’도 괴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작가들은 올림픽이 아마추어 정신과 건전한 경쟁을 옹호하는 대신 성적 지상주의가 판치고 국력을 선전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을 비꼰다. 시징 올림픽의 종목으론 신발을 들고 하는 3자간 탁구, 흰 붓을 들고 서로의 몸을 간지럽히는 펜싱, 티스푼을 이용해 서로의 소주잔에 얼음덩어리를 넣는 아이스하키 등이 있다. 치열한 경쟁 끝에 시상대에 오른 세 사람은 노랑, 초록, 빨강 피망을 목에 건다.
작가들은 철저히 현실에 없는 것을 지향했다. 오자와 쓰요시는 “한중일 삼국에서 모인 작가들을 한 데 묶는 호칭을 고민하다 북경, 동경, 남경은 이미 있으니 서경을 선택했다”며 “시징은 눈에 보이지 않고 현실에 없는 도시”라고 말했다. 김홍석은 “지엽적인 사회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인간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 사람이 시징 대통령을 돌아가면서 맡아 제안하는 정책은 비현실적이나, 혁명적이다. 예를 들어 시징의 교육정책은 무지한 사람을 선생님으로 둔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무지한 사람이 스승으로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다가 학생들의 답을 듣고 모든 의문을 풀게 된 후 그만두면 스승과 학생 사이에는 지적 평형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답’보다는 ‘질문’을 더 중시한다는 시징의 교육정책은 동아시아의 일방적인 교육 문화를 반성하게 한다.
시징맨은 2006년부터 가상 도시 프로젝트를 시작해 2010년 미디어시티서울, 2012년 광주비엔날레 등에 참가해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시징맨으로서 만들기로 한 다섯 장의 에피소드 중 네 장을 선보이는 종합전시다. 마지막 장은 아직 준비 중이다. 김홍석은 “함께 작업하는 것이 즐거워 일부러 마지막 장을 만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일까지다. (02)3701-9500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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