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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마약까지 찍어내는 3D 프린팅… 규제는 2D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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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마약까지 찍어내는 3D 프린팅… 규제는 2D 수준

입력
2015.05.2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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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수에서 전투기 부품까지 무궁

2020년 12조원대 장밋빛 시장

"지적재산권 분쟁도 급성장할 것"

기존 제품·디자인 이용한 3D도면

판매 사이트 올렸다 소송 잇달아

기존의 법으로 규제 한계

부작용 막아낼 법적 틀 마련 시급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지난 3월 한쪽 팔이 불완전하게 발달한 7세 소년 알렉스에게 3D 프린터로 제작된 아이언맨 의수를 전달해 주먹을 서로 부딪히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지난 3월 한쪽 팔이 불완전하게 발달한 7세 소년 알렉스에게 3D 프린터로 제작된 아이언맨 의수를 전달해 주먹을 서로 부딪히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사고로 17살 때 시력을 잃은 임산부 타치아나 게하(30)에게 최근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태아의 초음파 입체영상을 3차원(3D) 프린터로 인쇄해 그 모습을 촉각으로 알 수 있게 됐다는 것. 지난 7일 의사로부터 조형물을 건네 받은 게하는 ‘나는 당신의 아들 무릴로입니다’라고 새겨진 점자와 아기의 얼굴을 쉴새 없이 더듬으며 손 끝에 그 모습을 새겼다.

게하의 감동적인 사연이 전세계로 퍼지면서 ‘3D 프린팅’ 기술이 인류에 새 희망을 심어줄 것이란 희망도 새삼스럽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이 기술이 단순한 제조업의 혁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동시에 이 기술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우려도 있다.

시각장애인 임산부인 타티아나 구에라가 이달 초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3D 프린팅 한 조각상을 만지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시각장애인 임산부인 타티아나 구에라가 이달 초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3D 프린팅 한 조각상을 만지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3D 프린터 시장, 5년 내 12조원 규모 성장

3D 프린터는 제조업의 지형을 뒤흔드는 핵심 기술로 빠르게 발돋움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3D 프린터 시장은 2009년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에서 2012년 2배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40억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에는 무려 108억달러(약 12조원)대로 커진다. 제작 비용이 저렴한 데다 제품을 만드는 방법도 쉬워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올 3월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선천적으로 한 쪽 팔이 성장하지 않은 7살 장애아에게 3D 프린터로 만든 의수를 선물하며 눈길을 끌었다. 아이언맨 로봇의 핵심 기술이 담긴 ‘만능 팔’을 본 딴 이 의수는 아이에게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겠다는 꿈을 심어줬다. 저비용으로 의수를 제작해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미국 청년 알버트 마네로는 이 ‘만능 팔’을 3D 프린터를 이용해 350달러에 제작했다. 비슷한 기능의 일반의수 가격이 4만달러에 달하는 걸 감안하면 일반의수 한 개 가격으로 114명의 비슷한 처지의 장애아에게도 꿈을 나눠줄 수 있는 것이다.

생활용품 업체 프록터앤갬블(P&G)과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도 최근 3D 프린터를 이용해 피부조직을 만드는 ‘바이오프린팅’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람 피부와 가장 비슷한 실험 대상을 개발, 이를 활용한 연구로 획기적인 상품을 만들겠다는 목표에서다. P&G관계자는 26일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바이오프린팅 연구개발비 지원 대상을 선발할 경진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면서 “바이오프린팅은 신생 사업 영역 중 성공이 가장 유력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로레알도 이달 생명공학 스타트업 기업인 오가노보와 손잡고 인간 피부를 생성하는 3D 프린팅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오가노보는 이미 독일 제약사 등과 제휴해 간과 신장 조직을 3D 프린팅하는 데 성공한 만큼, 5년 뒤에는 살아있는 피부를 3D 프린터로 인쇄하는 데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항공방위산업체인 BAE시스템스 역시 지난해 토네이도 전투기에 3D 프린터로 만든 금속 부품을 장착하고 시험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BAE시스템스는 “서잉글랜드 공군기지에서 만든 부품들은 제작비가 100파운드(약 17만원)도 안 들었다”면서 “매년 수십만 파운드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도 최근 3D 프린터로 로켓과 항공기, 우주선, 핵융합로 등에 이용되는 금속부품을 제조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 청년 요시모토 이무라가 3D 프린터로 만들었다 압수당한 총. 마셔블닷컴 캡처
일본 청년 요시모토 이무라가 3D 프린터로 만들었다 압수당한 총. 마셔블닷컴 캡처

총기, 약물 제조에 악용되기도

반면 3D 프린팅 기술이 골치덩어리를 낳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선 저작권 침해 문제다. 3D 프린팅 사업체인 뉴프로토는 최근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왕좌를 본 따 스마트폰 충전 거치대 3D 도면을 만들었다. 이후 한 웹사이트에 이 도면을 50달러 가격에 등록,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을 방영 중인 미 방송 채널 HBO는 뉴프로토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이를 막았고, 두 업체의 갈등은 지속됐다. 지난해에는 한 디자이너가 에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캐릭터를 본 따 3D 프린터로 화분을 만들고, 이 도면을 3D 도면 판매 사이트에 올렸다 저작권을 문제로 법적 분쟁을 벌인 바 있다. 영국 지식재산청은 올 1월 관련 보고서를 내고 “3D 프린터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지식 재산권 침해 사례는 급성장할 것”이라며 “관련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3D 도면 저작권 관련 법과 규제 수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총이나 마약 등은 더 큰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2013년 미국인 코디 윌슨이 창립한 총기도면 공유단체 디펜스디스트리뷰티드(DD)는 세계 최초로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권총 제조법을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했다. 실제로 총알 1발을 쏠 수 있는 플라스틱 권총 ‘리버레이터’ 도면은 화제를 뿌렸고, 열흘도 안 돼 10만 번 이상 다운로드 됐다.

곧이어 3D 프린터로 만든 금속 총까지 탄생했다. ‘솔리드 컨셉트’라는 미 업체는 3D 프린트로 제작한 M1911 금속재질 총과 이 총의 시험발사 영상을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이들이 공개한 총은 3D 프린터로 제작된 부품 33개로 이뤄져 있고, 나일론으로 된 손잡이 부분 등 일부를 제외한 부품이 대부분 스테인리스강과 합금 등 금속 재질로 돼 있다. 영상에 등장한 총기 전문가는 이 총으로 50발을 성공적으로 발사해 일부는 30m 떨어진 지점에도 명중시켰다. 솔리드 컨셉트는 “우리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연방총기면허(FFL)를 소지한 3D 프린팅 전문 업체”라며 총기면허증을 소지한 개인이 구매를 원하면 5일 내로 모든 부품을 배송하겠다고 광고해, 논란은 이어졌다.

3D 프린팅을 통한 약물 제조도 현실화를 앞두고 있다. 영국 글래스고대 리 크로닌 교수는 분자 성분으로 된 원재료 잉크를 3D 프린터에 넣어 의약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학ㆍ과학전문기자 마이크 파워는 저서 ‘Drugs 2.0’에서 “개인이 집에서 3D 프린터로 엑스터시 등 합성 마약과 코카인을 만드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어떠한 자물쇠도 해제할 수 있는 ‘만능 열쇠’가 3D 프린터로 만들어져 독일에선 절도범죄 우려가 높아졌고, 지문이나 신체 조직을 이 기술로 복제해 기밀 정보를 빼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각국 정보기관의 보안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신기술 발달에 대응 위한 제도와 법규 구멍

이처럼 3D 프린팅 기술 영역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그 부작용을 막아낼 법적 틀은 없는 상태다. 미국과 일본 등이 국가 차원에서 관련 문제를 다룬 적이 있으나 3D 프린터 출현 이전에 만들어진 법을 적용한 탓에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윌슨의 ‘리버레이터’ 도면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미 국무부는 부랴부랴 ‘웹사이트에 올린 총기도면을 삭제하라, 그렇지 않으면 기소될 수 있다’ 고 그에게 통보했다. 국제무기거래규제(ITAR)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3D 총기 도면은 M16 소총과 같은 무기의 도면과 같은 것이어서 이를 웹사이트에 게재한 행위는 무기 수출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윌슨은 이달 6일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미 국무부와 존 케리 국무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윌슨은 총 자체가 아니라 그 총을 출력할 수 있는 도면을 공유했고, 이를 막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7일 가디언을 통해 “3D 프린팅 총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는 것을 국가가 막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일본 요코하마 지방 법원이 3D 프린터로 총을 제작한 이무라 요시모토(28)에 무기 등 제조법 위반 및 총포ㆍ도검류의 개인소지 단속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이무라는 법정에서 “총알 발사를 막기 위해 알루미늄 판을 총신에 넣어 발사할 수 없는 상태로 가공했다”며 “살상 능력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가나가와현 과학수사연구소는 권총이 실탄 발사가 가능하며 살상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일본 내외에서는 3D 프린팅의 정확한 허용 범위가 정해지기도 전에 실형이 선고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3D 프린팅 기술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이 기술을 완전히 이해하고 문제 가능성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법규와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는 abc방송에 “추적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고, 제작도 쉬운 3D 프린팅 기술을 정부가 전혀 규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마땅한 법을 내놓지 않으면 이 기술은 우리를 점차 파괴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신지후기자 h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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