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두리 톱니 개수 동전 종류마다 달라
500원짜리는 120개, 100원은 110개, 50원짜리 동전은 109개의 톱니(밀, mill)를 가졌다. 둥그런 표면에서 오돌토돌 만져지는 작은 톱니는 일종의 위조 방지용이다. “개수에 맞춰 정확하게 새기는 압인작업 자체가 일반인이 흉내내기 어려운 고난도 공정이기 때문”이라고 조폐공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동전의 톱니는 17세기 영국 물리학자 뉴턴이 고안했다. 동전을 구성하는 금속의 가치가 곧 동전의 가치였던 시대 금화 가장자리를 깎아내 빼돌리는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공권력이 동전의 가치를 보증하고 그 가치도 낮아진 오늘날엔 위조 우려도 톱니의 역할도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복권 긁을 땐 10원짜리 동전이 최고
세계적인 과학자에 의해 탄생했으나 즉석복권을 긁을 땐 차라리 없으니 만 못 한 것이 바로 동전의 톱니다. 울퉁불퉁한 테두리 때문에 은박이 고르게 안 벗겨지고 복권 표면에는 흠집도 생긴다. 설마 찢기기야 하겠냐 마는 당첨의 염원을 실현하는 중대한 절차에서 쉽게 용납할 순 없는 일이다. 즉석복권 긁을 땐 그래서 매끈한 10원짜리 동전이 최고다.
때론 액면가 넘는 존재감 드러내고
낭만 외에 가진 게 없는 청춘은 전 재산이 동전 한 닢뿐이고, 땡전 한 푼도 없다면 그 보다 더한 빈털터리가 틀림없다. 소유의 가장 작은 단위까지 값어치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전은 때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트래비 분수나 청계천 같은 명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원 비는 장소’. 수면 아래 쌓인 동전 무덤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주머니를 뒤지게 된다. 어느새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동전 한 닢엔 액면가를 뛰어넘는 고귀한 가치, 간절한 소원이 담기게 마련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동전에 운명을 맡기는 일도 흔하다. 월드컵 축구 결승전에서 심판은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전을 던져 양팀의 위치와 선공을 결정한다. 앞과 뒤의 공존, 균등한 양면성 덕분에 동전 던지기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공정한 제비뽑기로 대우를 받는다. 얼마 전 캐나다 주 의원 선거에서는 동점 득표자끼리 동전을 던져 당선자를 결정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때론 넉넉지 못한 청춘들 위로
신용카드와 전자상거래가 대세인 요즘 현금 사용은 갈수록 줄고 있다. 특히, 동전은 지불을 목적으로 한 화폐라기 보다 쓰고 남은 나머지, ‘거스름 돈’으로 굳어진 듯 하다. 그러나 몇 푼 안 되는 동전이라도 살다 보면 반드시 필요한 구석이 있는 법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이나 취업준비생, 싱글족 사이에선 세척 공정에 따라 동전으로 결제하는 빨래방이 인기다. 최근에는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면 두 곡을 부를 수 있는 동전 노래방이 등장해 부담 없는 스트레스 해소가 가능하다. 손 세차 한번에 1, 2만원은 아깝고 자동세차도 못미더울 때 찾는 셀프 세차장 역시 동전을 투입한 개수만큼 세차설비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동전 한두 개로 해결될 작업이 아닌 만큼 동전 몇 개 아끼려다 세차에 실패하는 수도 있다. 입원 병동의 공용 전자레인지나 세탁기, 텔레비전 역시 동전을 넣어야 사용이 가능하다.
항의나 화풀이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여기저기 넓은 오지랖에도 불구하고 주머니 속 동전 꾸러미는 항상 처치 곤란이다. 한 번 받은 거스름돈은 그날 밤 서랍이나 저금통으로 직행한 후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 해 평균 동전 주조에 쏟아 붓는 비용이 600억 원인데 비해 지난해 동전 환수율은 25%에도 못 미쳤다. 범국민 동전 교환운동까지 벌이고 있지만 동전 재 사용률은 갈수록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육중한 무게와 크기 때문에 지폐나 신용카드보다 휴대성이 떨어지고 세는 일도 번거롭기 때문이다. 동전의 이런 단점을 화풀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달 노동청에 불려온 한 업주가 전 종업원에게 체불임금 18만원을10원짜리 동전 다섯 보따리로 지급하는 복수극 아닌 복수극을 벌이는가 하면 몇 해 전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제도 폐지에 항의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동전으로 통행료를 납부하는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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