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프로 스포츠계를 강타한 승부조작 ‘악령’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남자 프로농구 전창진(52) 안양 KGC 인삼공사 감독이 승부조작 스캔들에 연루돼 경찰의 소환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전 감독은 2014~15시즌 2~3월경 사설 스포츠토토에 거액을 베팅한 뒤 3~4쿼터에 후보 선수들을 투입해, 고의 패배로 승부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 감독은 이를 통해 2배 가까운 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승부조작은 전 감독이 지난 시즌 부산 KT 지휘봉을 잡을 때 일어난 일이다. 경찰은 전 감독이 사채업자로부터 3억원을 빌려 도박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
4년 전 프로스포츠를 망라하고 승부조작 파문이 불어 닥친 가운데 유독 농구가 뿌리 깊은 ‘의심’을 받아 왔다. 앞서 2005년 원주 TG삼보(현 동부) 소속 선수였던 양경민이 자신이 출전한 경기의 스포츠토토를 대리 구입해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고, 2년 전에는 강동희 전 원주 동부 감독이 2011년 4차례에 걸쳐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강 전 감독은 법원에서 징역 10개월 실형과 추징금 4,7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국가대표 가드를 지낸 한국 농구의 간판인 강 감독이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전 감독 역시 동부와 KT를 최강팀의 반열에 올려 놓은‘우승 청부사’로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프로농구가 불법 스포츠도박의 집중 타깃이 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불과 5명만 뛰는 종목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정 선수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감독이 주전 가운데 1, 2명만 빼도 경기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선발 출전 선수만 11명인 축구, 9명인 야구와 비교해 보면 짐작이 간다. 여기에 야구처럼 일체의 장비 없이 오직 선수 개인의 기량으로 득점이 이뤄지기에 조작이 용이한 편이다. 야구의 경우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2011년 같은 혐의로 퇴출된 모 투수의 경우처럼 ‘몇 구째 볼을 던져라’는 식의 디테일한 항목이 아니라면 승부조작은 언감생심이다. 축구 역시 득점 확률이 낮아 승부 자체를 조작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평균 60~70점대 득점이 이뤄지는 농구는 골을 넣고 싶다고 넣을 수는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고의로 득점 실패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 감독의 이번 혐의처럼 감독이 승패를 조작해야 하는 경우라면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는 벤치 멤버를 투입하면 된다.
포스트시즌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10개 구단 가운데 6위까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농구는 정규리그가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6강이 일찌감치 결정되면 하위 4팀은 다음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번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 전 감독 역시 지난 시즌 KT가 6강에서 탈락한 2~3월 사이 5경기의 승부조작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전 감독의 변호인은 “전창진 감독을 따르는 후배 A, B씨가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고,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전 감독 이름을 판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전 감독의 인터뷰 내용도 도마에 올랐다. 전 감독이 “내 별명 중에 ‘전토토’(전창진+스포츠토토)가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고 언급한 것. 그는 “왜 나를 ‘전토토’라고 하는지 진짜 궁금하다”면서 “칭찬도 비난도 다 관심의 표현이지만 가급적이면 KGC 인삼공사 팬들로부터는 비난보다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한편 한국농구연맹(KBL)은 현직 감독의 승부조작 혐의와 관련해 농구 팬들에게 사과했다. KBL은 26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승부조작 수사와 관련해 프로농구가 다시 한 번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심려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농구 팬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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