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서 떨어져 중상 입은 직원
경희대 심재명씨 등이 침착히 도와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휘경동 경희대캠퍼스에서 전공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심재명(21ㆍ한의예과 2년ㆍ사진)씨의 눈에 나무에 매달린 수상한 물체가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한쪽 발이 나뭇가지에 걸린 채 머리를 땅에 박고 있는 사람이었다. 의식을 잃은 부상자의 머리와 귀에서는 피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학내 순찰을 하던 관리실 직원 박재규(63)씨가 나무에 걸린 검은색 비닐봉지를 발견하고 치우려고 올라갔다가 중심을 잃고 실족한 것이었다. 박씨는 추락 과정에서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 두개골 뒷부분이 산산조각 났다.
심씨와 주변 학생들이 박씨를 돕기 위해 한 걸음에 달려 갔으나 한의대생 눈에도 피를 흘리며 입에서 거품을 물고 있는 환자 모습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한의대 예과 2학년에 불과해 아직 이렇다 할 실습 경험도 없는 처지였다. ‘잘못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지만 심씨는 침착하게 박씨에게 다가가 수건으로 상처부위를 감싸고 머리를 심장보다 높게 지지하며 지혈했다. 중간에 의식이 돌아온 박씨가 움직이려고 하자 그를 제지하며 추가 부상이 생기지 않도록 사력을 다했다. 심씨 동기생들도 119에 신고를 하고 구급대 지시대로 주변을 정리하며 도왔다. 신고 5분 만에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심씨는 박씨의 손을 꼭 잡으며 곁을 지켰다.
곧 3분 거리의 경희의료원으로 후송된 박씨는 조각난 두개골을 접합하고, 격막외출혈(뇌를 둘러싸는 막과 두개골 사이에 외상으로 피가 고여 뇌를 압박하는 상태)을 막는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박씨를 담당한 의료진은 “환자의 나이가 적지 않아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마비, 호흡곤란 증세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빠른 신고와 적절한 응급처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지난달 21일 퇴원해 자택에서 요양 중이다.
박씨는 2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큰 부상에도 신체 어느 곳 장애 없이 회복하고 있어 하늘이 도왔다”며 “다음달 학교로 복귀하면 학생들을 직접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처음 타인의 생명을 구한 심씨에게도 이번 일은 좋은 의료인이 돼야겠다는 자극이 됐다. 그는 “아직 배움이 짧은 탓에 눈 앞의 환자를 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좌절감을 느꼈다”며 “책임감을 갖고 더욱 전공 공부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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