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들에게 ‘경기하기 싫은 상황’을 말해보라면, 열에 셋은 추운 날씨다. 또 다른 셋은 오락가락 내리는 비다. 그리고 나머지 넷은 아마도 ‘오후 2시 경기’를 꼽을 것이다. 낮 경기가 좋다는 1군 선수는 거의 없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예외가 있다. 롯데 안방마님 강민호(30)다. 2004년 프로에 뛰어들어 올 시즌 놀라운 성적을 쌓고 있는 그가 프로야구 선수들의 ‘낮 경기 편견’을 허물고 있다.
강민호는 25일까지 42경기에 출전해 138타수 45안타 타율 3할2푼6리에 15홈런 39타점을 기록 중이다. 장타율은 무려 7할1푼7리나 되고 출루율도 4할4푼6리다. 시즌 전 강민호에게 30홈런을 주문한 이종운 롯데 감독은 “스윙이 자신 있게 나온다”며 무한 칭찬 중이다. 장종훈 롯데 타격코치도 “원래 이 정도 치는 선수 아니었는가”라며 박수를 보냈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강민호는 KBO(한국야구위원회)리그 사상 최초로 3할 타율과 30홈런 100타점을 동시에 달성하는 포수가 될 수 있다. 체력 관리만 잘 한다면, 2013년 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하며 세운 당시 프로야구 최고 몸값(75억원)과 함께 포수 최초의‘3-30-100’(3할-30홈런-100타점)이라는 또 다른 대기록을 쓸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호성적 대부분이 낮 경기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는 24일 사직 LG전을 포함해 올 시즌 총 9차례 2시 경기를 치렀다. 이때 타율은 4할8푼5리(33타수 16안타)이며 만루포 2방을 포함해 홈런도 9개나 터뜨렸다. 타점도 많다. 시즌 타점의 절반 이상인 23타점을 이 9경기에서 쓸어 담았다. 그리고 2시 경기 장타율은 무려 13할3푼3리다. 출루율 5할6푼4리를 더한 OPS(출루율+장타율)도 18할9푼7리로 믿기 힘들 정도다.
평소 야행성으로 길들여진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낮 경기는 지옥과 같다는말이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것도 고난의 행군이라고 한다. 실전에서 투수의 공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타자도 많다. 하지만 ‘잘 나가는’ 강민호에겐 이 같은 속설이 힘을 잃는다. 방망이가 부러진 상태로 담장을 넘기는 절정의 타격감으로 상대 투수는 물론 날씨도, 기온도 가리지 않는다. 이래저래 낮에도 밤에도 가장 무서운 타자가 강민호다.
인천=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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