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듯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을 겪고 있는 중국, 세계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 한국. 두 나라의 문인들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겪는 인간의 소외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25일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 파금문학관에서 열린 제9차 한중작가회의에서 한국 소설가 정찬(62)씨와 중국 소설가 거수이핑(49?葛水平)씨는 두 나라의 작가들의 문학적 문제의식이 전에 없이 닮아있다는 데에 놀랐다. 대담 전 정찬씨는 거수이핑 소설 ‘집 안의 시골 남정’을, 거수이핑씨는 정찬 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낭독한 뒤 판이하게 다른 주제와 시선, 작품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동떨어진 존재’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냈다.
정씨는 1983년 ‘말의 탑’으로 등단해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30년간 소설을 집필했으며, 소설 시 산문 드라마각본 등을 넘나든 거씨는 2011년 국내 출간된 한중일 소설가 작품집 ‘젊은 도시, 오래된 성’에서 단편소설을 선보였었다.
정찬(이하 정)= “(‘집 안의 시골 남정’은) 딸의 시선에서 아버지를 추억하는 내용인데 한국 소설 중에도 그런 작품이 꽤 많다. 중국에서는 가족관계를 다룬 소설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나.”
거수이핑(이하 거)= “사회 발전과 함께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붕괴된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 사람들 사이가 멀어지고 감정이 사라지고 있다. 많은 소설가들이 문학의 힘을 빌어 이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 내 소설 속에서 아버지는 대단한 학자도 아니고 부지런한 사람도 아니지만 딸에게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가르쳐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정찬 소설가의)‘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카프카의 작품과 제목이 같다. 중국에서는 서양의 작가로부터 영향을 받았거나 내용이 비슷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나?”
정= “내용이 비슷하면 당연히 안 된다. 다른 작품을 끌어들이더라도 작가가 그것을 통해 독창적인 내용을 만들어야 좋은 소설로 읽힌다.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현재 세계가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인간의 욕망을 존중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욕망의 아수라장이 됐다. 문명에 물들지 않은 존재가 우리 사회를 보며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보여주기 위해 카프카의 작품을 끌어온 것이다.”
거= “실례지만 나이가…?”
정= “하하. 아마 내 쪽이 더 많을 것 같다.”
거= “나이를 물은 건 서로의 시대를 대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느린 생활에서 빠른 생활로의 전환을 겪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에 비해 현실을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정= “그렇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우리가 시간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시간에 끌려간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혁명적인 속성이 있다. 이야기란 전통적인 의미에선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니까.”
거= “한국의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사회에 대한 사명감을 크게 느끼나.”
정= “나는 사회와 존재에 대한 관심이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존재 안에 타인과 세계가 다 포함돼 있기 때문에 존재와 사회를 분리하는 건 난센스다. 내 경우 존재에 대한 성찰에 좀더 관심이 많았지만 최근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매우 절망스럽다. 그 때문에 이전보다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늘어난 것 같다. 선생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가?”
거= “사찰과 농촌 등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중국 전통에 대해 써보고 싶다.”
정= “중국에서 여성 소설가로 산다는 건 어떤가.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거= “이것도 한국과 비슷할 것 같다. 여성은 가족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그는 두 아이의 엄마다), 글쓰기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 장점이라면 급변하는 사회에 대해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관점이나 감상이 있다.”
청두=글ㆍ사진 황수현기자 so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