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사람길' 아니라 역사ㆍ지형적으로 잃어버린 서울 환기할 자리
서울 온 적 없는 건축가 DDP 설계 삶의 맥락 없는 멋진 조각품일 뿐
'사람 중심' 표방한 서울시 '인문도시'의 가능성 망각하는 건 아닌지
서울역 앞 고가도로 국제설계 현상공모전 발표작품이 전시되는 서울시민청에서 봤다며 한 시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거기에는 공모전에 출품되어 2등으로 ‘낙선’한 조성룡 건축가의 ‘서울역고가-모두를 위한 길’에 한 시민이 붙인 포스트잇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공원인데 왜 나무가 이렇게 없어요’라는 불만이었다.
시인이 보내온 포스트잇은 문학평론을 하는 내게 ‘이렇게 건조한 시가 왜 좋은 시지요’라고 다소 화난 표정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일반 시민들의 흔한 물음을 연상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이 글이 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저 포스트잇의 불만에 공공적 관점을 담아 나름의 대답을 하는 일은,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역 고가도로 보행로 전환 사업과 관련하여 좀 다른 시각을 전해줄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조성룡 건축가의 프로젝트팀 일원으로 참여했다. 건축 비전문가가 어떻게 참여했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이는 서울시가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총 7명의 건축가를 지명하여 진행된 서울역 고가 국제설계공모전 참가자인 조성룡 건축가의 특별한 생각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건축을 ‘공공의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고, 그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를 해온 ‘공공 건축가’로 유명하다. 그에게 ‘공공건축’은 행정기관에서 발주하는 행정사업이 아니라, 시민적 삶의 시공간에서 이뤄지며 영향을 주고받는 모든 물리적 공간화 작업과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다. 그가 공모전 참여 작가로 지명을 받고서도 참여 여부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던 것도 공공적 상징성이 매우 높은 장소에서 진행될 이 프로젝트의 필연성과 당위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며, 결국 참여한 것도 이 공공적 성격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에서 이 팀은 건축 관련 전문가 외에 도시연구자, 작가, 인문학자, 출판전문가, 대학생ㆍ대학원생들이 결합되는 방식으로 출발했다. 공공성이란 단지 여러 시선들을 양적으로 합쳐 놓은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공공성에는 표면 아래로 스미는 깊이,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살피는 감각, 현재 시간만이 아니라 시간의 지층에 켜켜이 쌓인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개방하고 예견하는 섬세한 시선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들은 ‘실사구시’적인 것에 근거해야 한다. 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인문(人文)’이라는 화두 속에서 녹여보려고 애썼다.
‘인문’이라는 말은 ‘인간의 무늬’를 뜻한다. 나는 ‘인문적’ 시선을 인간의 삶과 시간 속에 흐르는 시선의 다양성과 맥락을 확보하되, ‘사실(fact)’에 기초한 시선이라고 본다. 예컨대 저 포스트잇의 시민적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인문적’ 시선으로 보면 거기에는 좀 더 고려되고 보충되어야 할 시선들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도심에 초록이 우거지는 것을 누가 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서울역 고가도로가 가르지는 주변에는 남산도 있고, 바로 옆에 서소문공원도 있다. 나무라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무겁고 그것을 저런 장소에 인공적으로 심어 길러내고 유지하는 데에는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든다. 노후한 고가도로에 큰 하중을 가하면서, 공중에 전기로 물을 돌리면서까지 많은 나무를 그 위에 굳이 심기보다는, 주변 지역을 잘 가꾸어 녹지화 하는 일이 비용은 물론 지형적 맥락에서도 맞는 방향이다. 게다가 좋은 ‘공원’에는 지금 당장 ‘다 자란 것’을 ‘심는 게’ 아니라 ‘자라날 수 있는’ 것을 심어 다음 시간의 여지와 성장의 지점을 남겨두는 게 순리이다.
서울시의 생각은 단순히 ‘뉴욕 하이라인 파크’를 선례로 삼아 폐기될 운명에 있던 낡은 차량길을 ‘사람길’로 전환한다는 아이디어였을지 모르나, 조성룡 건축가의 눈에 고가도로가 가로지르는 지역은 역사적으로나 지형적으로나 잃어버린 서울의 시간을 환기하고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이곳은 현재 시민들의 역동적인 삶뿐만 아니라 조선조 시국사범의 오랜 처형장이었던 서소문공원터,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끊어진 서울도성, 현대 서울의 증인인 서울역과 KTX와 공항철도, 북으로 이어진 경의선 철로, 조선조 한양 쪽 물자운행로인 마포로 이어지는 만리동까지 서울 시간이 압축되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조성룡 건축가는 이미 상당한 정도의 인문적 시야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 지역 길가와 골목들을 대동여지도를 그리는 김정호의 마음으로 걷고 또 걸었다. 이번에 제출된 안은 한 노 건축가 나름의 최대한의 실사구시적 해법이었다. 그 해법은 이 지역이 지닌 시간의 깊이를 다시 확보하고 현재 시민의 삶에 활력과 개방성을 부여하기 위해 진정한 ‘도시재생’을 위한 미니도시 건설이다. 총예산 320억원 중 70%인 260억원을 차지하는 고가도로 보수비용을 반 정도로 줄여 경제성을 확보하고, 고가도로가 지나는 지역 맥락에 따라 시민생활을 실질적으로 활성화시키는 데 나머지 비용을 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조성룡 건축가의 안은 동대문운동장 터 현상설계공모 때와 마찬가지로 ‘또’ ‘2등’으로 결정되었다. 건축업계 사람이 아닌 인문학자이자, 공식적 ‘옵서버’였던 사람으로서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이 공모안이 이번에도 ‘국제’ 공모전 형식으로 제안됐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세훈 시장 재임 시절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운동장 DDP건물이 국제공모전에서 당선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서울시민으로 적잖은 모욕감을 느낀 적이 있다.
하디드는 이 건물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동대문 지역은 물론이고, 한국을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공의 집을 지으면서 이러는 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실례가 아닌가. 그 스스로가 ‘집’을 지었다기보다는 그 집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맥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멋진 ‘조각품’을 만들었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 맥락 없는 건물이 서울 도심의 중요한 역사적인 터가 아니라 ‘신도시’에 있었으면 훨씬 더 빛났으리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외국’ 건축가의 설계도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맥락이 있는 장소의 도시 지형을 그려내는 이런 공모방식은 과연 ‘인문적’인 것일까. 시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세계적인’ 누구의 건축물이라는 화려한 포장이 아니라, 삶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생활의 실사구시가 아닌가.
‘시민 소통’ 사람 중심’을 표방하는 서울시에 ‘불통’ 이미지를 씌우고 있는 이 사업에서 또 하나 완전히 망각되고 있는 것은 ‘인문 도시’의 가능성이다. 민주적인 소통이 사라진 곳에서는 공공적 삶도, 인문적 깊이도 동시에 사라진다. 서울시가 처음 제안했던 것이 ‘사람길’ 곧 ‘인문적 보행로’가 아니었는지 다시 되물어 볼 시점은 아닌가.
함돈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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