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국 미얀마서 무슬림 엑소더스
중간 경유지 태국 단속 강화에
사태 심화됐지만 "난민 수용은 못해"
국제사회에 등떠밀린 말레이·인니
7000명 임시 거처 1년간 한시 운영
29일 15개국 대책회의 전망 어두워
로힝야족 무함마드 아민(35)이 사는 곳은 인도네시아 랑사시 항구 근처 난민캠프다. 인도네시아정부가 임시로 마련한 이 곳엔 미얀마 로힝야족과 방글라데시 난민 677명이 먹고 잔다. 방수포 텐트를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오는 동안 배 위에서 겪었던 끔찍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부족한 식량과 물을 차지하려고 표류하는 배에서 서로 죽고 죽였던 이야기다. 살아남아 난민캠프에 들어 왔지만 몸에 남은 상처만큼이나 기억도 쉬 사라지지 않는다.
로힝야족 무함마드 라피크(21)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다른 난민 집단들끼리 망치와 칼로 폭력을 휘둘렀다”고 했다. 아민도 일가족이 나무 널빤지로 맞아 죽는 모습을 목격했다. 시체들은 바다에 던져졌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들의 입국을 한 차례 거절했다. 해군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배를 다시 바다로 떠밀었다. 그렇게 근해를 떠돌다 아체 지역 어부가 이들을 구조한 게 15일이다. 국제사회의 압박에 밀려 인도네시아 정부기 이번엔 입국을 허가했다. 아민은 미얀마에서 밀입국 배에 탄 지 3달 만에 마른 땅을 밟았다.
아직도 난민 6,000~8,000명이 떨어져 가는 식량과 물을 붙잡고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바다에 갇혀 있다. 유엔은 동남아시아 해상 난민 사태를 가리켜 “거대한 인도주의적 위기”라고 표현했다.
로힝야족, 오래된 핍박
이번 달 초 본격화한 동남아 해상 난민 사태 이후 현재까지 3,500명 이상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방글라데시의 해안에서 구조됐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만 총 2만5,000명이 동남아 해상을 통해 다른 국가로 이주를 시도했다. 대부분은 미얀마에서 종족ㆍ종교 차별에 시달리는 로힝야족이지만 극심한 가난을 겪는 방글라데시 국민들 역시 일자리를 찾아 난민 행렬에 동참하는 추세다.
미얀마의 반(反)로힝야 정서는 뿌리 깊다. 미얀마는 국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교도가 국가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다. 무슬림 소수종족인 로힝야족은 미얀마에서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다. 시민권도 주지 않아 로힝야족 대부분은 무국적 상태다. 110만명으로 추산되는 로힝야족은 대부분 미얀마 라카인주에 거주한다. 미얀마에선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 밀입국자라고 간주하고 있다. 미얀마인들은 그래서 로힝야를 벵골만 출신 밀입국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담아 ‘벵갈리’로 낮춰 부른다. 반면 로힝야족은 자신들이 과거 이 지역에 정착한 페르시아 혹은 아랍 무역상의 후손이라고 여긴다.
로힝야족 대규모 난민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2012년 라카인주에서 있었던 불교도들과의 유혈 충돌로 당시에만 14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미얀마 강경 불교도 집단인 마바타(Ma Ba Thaㆍ민족과 종교 수호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불교도들은 심지어 무슬림이 불교도보다 아이를 많이 낳아 무슬림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한 산아제한정책을 주장해 왔다. 라카인주에는 이미 산아제한정책인 ‘두 자녀법’이 도입됐다. 미얀마 내 무슬림 비율은 공식적으로 미얀마 전체 인구(5,100만명)의 4%지만 실제로는 10%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 오래된 핍박이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게 된 것은 태국 정부가 인신매매 단속에 나서면서부터다. 태국 정부는 1, 2일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맞댄 송클라주에서 무덤 32개와 국제 인신매매 피해자로 보이는 시신 26구를 발견하고 단속을 강화했다. 이 지역은 로힝야족과 방글라데시 난민들이 말레이시아로 밀입국하는 주요 경로로, 인신매매범들은 이 캠프에 난민들을 감금시키고 몸값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태국 정부의 단속이 오히려 동남아 해상 난민 사태를 더욱 심화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밀입국 알선책들이 단속이 심해지자 배를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 단속을 피해 해안가에서 먼 경로를 택하면서 난민선 상황은 더 열악해졌다.
24일에는 태국에서 발견된 무덤들로부터 불과 100m 떨어진 말레이시아 북부 페를리스주 파당 베사르 지역에서도 난민들이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139개의 무덤이 발견됐다. 무덤에는 여러 구의 시신이 한 데 매장돼 있어 피해자 수는 이보다 늘어날 수 있다. 경찰들은 인신매매 캠프의 상태로 미루어 봤을 때 해당 캠프들이 최근 2주 전까지 운영됐다고 추정했다.
동상이몽 주변국
문제 해결에는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주변국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지만 반응은 미온적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정부는 20일 외무장관 회담을 열고 난민 7,000명에게 임시 거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국제사회가 난민 문제 해결을 돕는다는 전제 하에서 1년으로 한시적이다.
태국 정부도 이날 “현재의 특수한 난민 유입에 대해 국제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동원할 것”이라는 내용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3국의 성명서에는 참여했지만 난민 수용은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태국은 자국은 전통적으로 난민들이 최종 목적지인 말레이시아로 향할 때 거치는 중간 경유지라는 입장이다. 말레이시아는 미얀마 주변국 중 로힝야족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국가다. 무슬림 국가인데다 비숙련 노동자가 부족해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태국 정부는 미국이 푸켓에서 난민선 구조를 위한 정찰기를 운영할 수 있도록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했다. 방콕포스트는 태국군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난민 문제로 미국이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경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주변국에서 난민 대상 인신매매가 근절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태국에서는 인신매매가 공무원까지 연계돼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이를 의식한 듯 “책임자를 반드시 찾겠다”며 “특히 공무원이 연루돼 있어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들이 왜 진작 단속하지 않고 피해가 커지고서야 뒷북 대응을 했냐는 질문에는 “경찰이 올해 초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된 경찰 2명 포함 37명을 기반으로 정보원을 조직했고 이번 단속은 이를 통해 이뤄낸 성과”라고 해명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의지 없는 미얀마 방글라데시
동남아 해상 난민 사태 해결을 위한 15개국 국제회의가 29일 태국 방콕에서 열릴 예정이지만 무엇보다 당사국인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의 사태 해결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되는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로이터는 22일 국영 미얀마 신문 ‘글로벌뉴라이트’를 인용해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인 민 마웅 라잉 장군이 전날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과 가진 동남아 해상 난민 대책 회의에서 “이번 달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난민들은 사실 로힝야족이 아닌 방글라데시인이지만 유엔난민기구(UNHCR)의 원조를 받기 위해 로힝야족인 척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민 마웅 라잉 장군은 그러면서 “미얀마를 비판하기 전에 이들이 출발한 국가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미얀마는 이 와중에도 로힝야족을 겨냥한 또 다른 산아제한정책을 실시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종족과 종교의 보호’라는 취지의 새 가족계획법에 따르면 여성들은 앞으로 한 번 출산을 하면 다음 출산까지 3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또 지방정부는 자율적으로 산아제한정책을 채택할 수 있다. 인권단체들은 결국 이 법안이 로힝야족을 포함한 무슬림 인구 성장 억제와 출산 통제를 하는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도 로힝야족 문제에 관해서는 “그들도 인권이 있고 시민권을 줘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방글라데시도 난민 행렬에 동참한 자국민들 탓하기에 급급하다. AFP는 방글라데시 국영 통신 방글라데시 상바드 상스타를 인용해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24일 이들이 “정신적으로 병들었다”며 “난민들이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 “방글라데시에도 일자리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들은 처참한 방법으로 국가를 떠나고 있다”며 “방글라데시에서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시나 총리는 또 “인신매매를 알선하는 브로커와 함께 불법적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처벌 받아야 한다”며 불법 이주에 대한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그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불법 해외 밀입국을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는 행위는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는 행동이라는 내용의 캠페인을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CNN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당국은 미얀마 해군에 의해서 구조된 방글라데시 국적 난민 208명의 본국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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