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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선] 변태들이 살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

입력
2015.05.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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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번 끝내주게 자극적이라고 필자를 욕해도 상관없다. 오늘은 욕 좀 해야겠다. 얼마 전 선고가 난 고등법원 판결이야기이다. 나아가 그렇게 판결할 수밖에 없도록 한 법률이야기이다.

남자친구의 상사 아니 사장이 남자친구 옆에서 잠자는 자신의 몸을 더듬는다. 그 상황에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대응은 네 가지 정도 된다.

첫째, 소리를 지르고 반항을 한다.

둘째, 어떻게 해야 될 지 고민하며 일단 계속 잠든 척을 한다.

셋째, 그냥 참는다.

넷째, 즐긴다.

단언컨대 여성들 대부분은 두 번째 반응을 택한다. 자다 말고 당한 황당한 상황에 상황파악을 하는 데에 몇 분이 걸리고, 그 후 어떻게 반응을 해야 남자친구에게 피해가 덜 갈까를 고민하는 데에 몇 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처음 본 남자친구의 상사가 몰래 몹쓸 짓을 하는데, 이를 즐기는 여성이 어디 있을까. 그런 여성은 남성들의 컴퓨터 안 숨김 폴더 안에나 존재할 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처음 본 남자친구의 상사가 몰래 몹쓸 짓을 하는데, 이를 즐기는 여성이 어디 있을까. 그런 여성은 남성들의 컴퓨터 안 숨김 폴더 안에나 존재할 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문제가 된 사건(▶ 관련기사)의 여성 또한 같은 경우였을 것이다. 다행히 남자친구가 옆에서 뒤척이는 바람에 변태사장이 잽싸게 도망을 갔지만, 그 직전까지는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로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변태사장에게 죄가 없단다. 이유는 여성이 잠든 척을 했기 때문이란다. 즉 반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행 또는 협박을 통해 “강제로”로 해야 성립되는 “강제추행”이 되지 않는단다.

또한 만일 그 여성이 정말 잠들었다면야, 항거불능상태에서 추행한 “준간강죄”라도 성립이 될 텐데, 진짜로 잠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준간강죄도 안 된단다. 결국 이리해도 죄가 안 되고 저리해도 죄가 안 된단다.

성적 행위라는 것이 합의를 가진 두 사람이 하면 로맨스이지만, 합의 없이 강제로 하면 죄가 된다. 결국 강제성이 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강제라는 게 무엇인가. 아주 쉽게 생각해보자.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게끔 하는 것, 그게 강제 아닌가. 역시나 국어사전에도 역시 강제란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의 자유의사를 억눌러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형법에서의 강제의 의미는 국어사전과 다르다. 우리 형법은 “폭행과 협박”이 동반되어야 강제성이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상대가 아무리 싫어했어도, 폭행과 협박이 없는 한 강간도 강제추행도 성립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와보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위 사건과 같은 경우, 대부분의 여성은 두 번째 경우를 택한다. 일단 어떻게 결단을 내려야 할 지 판단이 쉬이 서지 않는 것이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좋아서라고들 착각하지 말아달라. 도대체 남자친구가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상황에서 처음 본 남자친구의 상사가 몰래 몹쓸 짓을 하는데, 이를 원하는 여성, 즉 즐기는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여성은 남성들의 컴퓨터 안 숨김 폴더 안에나 존재할 뿐이다.

국어사전과 형법에서 정의하는 '강제'의 개념은 다르다. 게티이미지뱅크
국어사전과 형법에서 정의하는 '강제'의 개념은 다르다. 게티이미지뱅크

한편 국어사전 나아가 일반상식의 정의대로라면 변태사장은 여성이 원치 않는 행동을 했으므로 당연히 강제추행죄에 해당되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형법이다. 피해자는 잠든 척을 하며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다. 따라서 변태 사장 입장에서는 별도의 폭행과 협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형법에 따르면 강제추행이 되지 않다는 것이 된다. 도대체 형법의 강제는 일반인의 강제의 개념과 어찌 그리 다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추행 자체가 폭행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판사님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형법에 그리 적혀져 있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아니 생각해 보니 형법도 욕할 것 없을지도 모르겠다. 40대 남성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해도 사랑이라고 하면 처벌할 방법이 없는 우리 형법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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