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거리엔 벌써부터 여름 기운이 후끈하다. 미세먼지만 아니라면 빨래하기 좋은 날들이다. 날을 잡아 마구 벗어둔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담는다. 건조를 마친 다음 옷장에 처박히면 내년 봄까지 긴 숙면에 들어야 할 옷들도 꽤 있다. 두께와 길이가 얇고 짧은 옷들이 대신 행거에 걸린다. 짐승들이 허물 벗는 걸 문득 떠올린다. 한때 흐드러졌다가 잠깐 사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꽃들의 안부도 궁금해진다. 봄의 어원이 ‘보다’라는 설이 맞다면, 인간의 시각 작용만큼 허망하고 찰나적인 것도 없을 듯싶다. 눈에 잠깐 나타났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떠올리면 짐짓 많은 게 숙연해진다. 지난해 똑같은 나무에 피었던 그 벚꽃과 올해 피었다 잎을 떨군 그 벚꽃은 과연 같은 존재일까. 내년에 다시 그 나무에 꽃이 핀다면, 그 역시 같은 것일까. 그 아래를 지나던, 불과 한 두 달 전의 나는 과연 똑같은 그 사람일까. 문득, 윤회란 사후의 질서가 아니라 현세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의 근본절차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서울에 있다가 오늘 대구로 떠나온 내가 왠지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나만 해본 건 아닐 듯싶다. 한 시절, 바람과 온기를 다스려주던 옷들을 빳빳하게 말려 개켜 둔다. 그리고 지난 해 입던 여름옷을 꺼낸다. 넌 누구니. 새삼 옷깃에 말을 묻혀 본다. 가을엔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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